엄마와 치매와 함께 21
수많은 치매 증상 중 최악은 먹는 걸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엄마는 다행히 잘 먹는 쪽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원래 입이 짧았다. 아버지가 거의 매일 드시는 고등어는 아예 젓가락을 대지 않았고, 엄마 표현으로 “콩나물, 두부, 뭐 그런 거”도 안 먹었다. 치매 초기에 내가 집에 들르면 아버지는 엄마가 밥을 며칠째 안 먹고 있다고 걱정하셨다. 담당 의사와 상의해서 식욕촉진제를 처방받기도 했지만 그 사실을 눈치챈 엄마는 용케 그 약을 골라내 버렸다.
그렇게 밥을 거부하던 엄마가 한두 해 지나자 오히려 잘 드시기 시작했다. 엄마 집 근처로 이사를 간 뒤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엄마를 움직이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엄마는 냉면, 돈가스, 볶음밥 등 뭐든 잘 드셨다. 게다가 고기를 찾기 시작했다. 나도 구워 먹을 소고기를 자주 사 갔고, 돼지고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도 엄마를 위해 갈비찜용 소고기를 사 오셨다.
하루는 구워 먹고 남은 고기를 다음날 저녁에 먹기로 하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다음 날 점심때 다른 볼일이 있어 엄마 집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엄마가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혼자 있으면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엄마가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잘 드신 덕분에 엄마는 점점 체중이 불었다. 오랜만에 오신 외삼촌이나 이모는 엄마 얼굴이 좋아졌다고 기뻐하셨다.
갑자기 불어난 체중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요양병원에 들어간 이후 조금씩 빠졌다. 다만 잘 드시는 쪽으로 변한 식성은 그대로 남아 정말 다행이었다. 요양원에서도 식사를 잘하셨지만, 1년 정도 지나자 원래의 홀쭉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밥 대신 죽을 먹겠다고 고집했다. 치아가 온전한데도 음식을 씹는 걸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인지 반찬도 몇 번 씹다가 입에 걸리면 자꾸 뱉어 버리는 바람에 다진 형태로 드리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요양원에서 하루에 두 번 제공하는 간식을 다 드셨고 심지어 안 드시는 옆 할머니의 몫까지 두 배로 드시는 날로 있었다. 잘 드시는 것에 나는 늘 감사했다.
엄마가 다시 사탕을 자주 찾았다. 하루는 양치질 직후에 또 사탕을 달라고 했다. 나는 두 번 거절했다.
“엄마, 방금 양치질했잖아. 오늘 세 개 먹었는데 내일 드시면 안 될까?”
엄마는 내 말에 금방 수긍했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그 대화를 잊고 또 사탕을 달라고 했다. 내가 마음을 바꿨다. 당뇨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탕 하나에 이렇게 실랑이를 해야 하나 싶었다.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어 드렸다.
사탕 드실 때 한쪽 뺨 안쪽에 가만히 두고 오래오래 천천히 녹여 먹는 엄마가 이날은 입 안에서 사탕을 이리저리 굴렸다. 한참 그러다가 말했다.
“하나도 안 달다.”
엄마는 또 한동안 사탕을 우물거리다가 손가락으로 꺼내 눈앞으로 가져갔다.
“사탕 맞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사탕이잖아.”
엄마는 사탕을 다시 입에 넣으셨지만 흡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맛을 잘 느끼지 못해서 요리할 때 간도 점점 짜게 맞춘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 사람이 쓴 치매 관련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기억났다. 치매 환자는 입맛이 변하기 때문에 음식에 향신료를 점점 많이 넣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설명을 이제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요양보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고 소식을 들었다. 옆방 할머니가 응급실에 내려가셨지만 결국 돌아가신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자식이 사 온 마시멜로를 아침에 드시다가 사레들어 그렇게 되었다고, 아침이라 몸의 기능이 떨어져 있어서 연하곤란(삼킴 장애) 위험이 더 컸을 거라고 했다.
연하곤란이 어르신들에게 많이 있는 증상이고 사레들어 돌아가시는 경우가 꽤 자주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레드는 경우 기관지로 넘어간 음식이 폐렴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연하곤란 환자의 경우 음식의 농도와 질감을 조절해야 하는데 걸쭉하면서 부드러운 음식이 좋다. 몇 년 후에는 엄마가 드시는 국에도 국물을 걸쭉하게 만드는 가루를 타 드려야 했다.
어르신이 60 여 분 계시는 요양원에서 사레드는 사고가 1년에 한두 번 일어난다는 말을 듣고 더욱 놀랐다. 그래도 엄마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약 8개월 후 엄마가 사레 사고를 겪었다.
그날 나는 일에 집중하느라 휴대폰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두 시간 만에 휴대폰을 봤는데 그 사이에 요양원에서 전화가 5통이나 와 있었다. 화들짝 놀라서 전화를 했더니 간호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으셨어요? 어머니 사레들어 아주 위험했어요. 다행히 이제 숨을 쉬시는데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상태를 지켜봐야 해요.”
간호사는 위급한 상황이 지나갔으니 급히 오지 않아도 된다고, 일 마치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고비를 넘겼다고 하니 일단 안심했다. 일을 끝내고 저녁에 병원에 갔다. 막상 병원에서 그때 상황을 자세히 들어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위는 이랬다. 요양원에서 직접 만들어 제공한 간식이 카스텔라였는데 그게 입 안에서 뭉쳐지면서 덩어리가 되어 목구멍을 막은 것이었다. 당시 엄마는 혼자서도 잘 드셨기 때문에 요양보호사는 다른 어르신 시중을 들다가 엄마를 돌아보았는데 엄마 얼굴이 파래지고 있었다. 때마침 혈압을 재러 방에 들어온 간호사가 위험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바로 응급조치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불렀다. 간호사들이 달려와 두 층 아래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엄마를 옮기면서 교대로 가슴을 압박했다. 청색증이 나타나 매우 위험한 상태이던 엄마가 마침내 카스텔라 덩어리를 뱉어 냈다. 위기를 넘겼지만 빵 부스러기가 폐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가까이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엄마 가슴에는 커다랗고 시퍼런 멍 자국이 있었다. 응급조치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이 다반사라고 들었다. 갈비뼈 골절 없이 위기를 넘겼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잘 회복하고 요양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양원에서는 간식 메뉴를 바꿨다. 사레들 위험이 있는 간식은 빼고 죽 종류로 많이 대체했다. 내가 챙겨 가는 간식에도 제한이 많이 생겼다. 안전이 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