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원하는 대로 시신 기증
엄마는 일찌감치 시신 기증 서약을 했다. 2006년 어느 날, 엄마가 서류를 한 장 내밀더니 서명해 달라고 했다. 엄마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니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아버지까지 시신 기증에 서명하시게 설득해 달라고 했다. 그건 자발적으로 결정할 문제여서 의향이 없는 것 같은 아버지 앞에서 나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시신 기증 결정은 존중했고 가족 동의 난에 서명을 해 드렸다.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고 오륙 년이 지난 후 물어봤다.
엄마, 시신 기증하겠다고 한 거 기억나?
응.
할 거야?
응.
엄마 목소리도 눈빛도 아주 또렷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내 생각이 흔들렸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에 친구가 말했다. 자기 선배가 엄마의 시신 기증에 동의하고 그렇게 처리했는데 그 후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나더러 그 결정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장기 기증은 수술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서 유족이 바로 시신을 인도받지만, 시신 기증의 경우 그 시기를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친구의 선배는 아직 장례를 마치지 못한 듯한 마음이고, 시신을 기증한 대학병원 옆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몹시 힘들다고 했다. 엄마의 뜻은 좋지만 사후 처리 기간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지 않겠느냐고 친구가 걱정했다.
친구의 말은 기억에 남았고 점점 마음이 바뀌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일이 년 후 이모에게 시신 기증을 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모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할 일이니 내 뜻대로 하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다시 사오 년이 지났다. 짬짬이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엄마의 선택을 존중해 드려야 할지 고민이 다시 찾아왔다. 결정이 쉽지 않았다. 고민을 마음 한편에 넣어두고 지내다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자고 다시 마음먹은 것은 2018년에 방영된 다큐 <죽음이 삶에 답하다>를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고 난 후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두 달 전이었다.
이 다큐에서는 존엄사, 죽음에 대한 공부 프로그램 등도 다뤘지만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끈 내용은 대만의 시신 기증 사례였다. 2015년 기준으로 죽음의 질이 세계 1위이자 아시아 1위인 대만에서는 누구나 삶의 마지막을 호스피스 병상에서 편안하게 맞을 수 있다고 한다. 대만 츠지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무언의 멘토(말없는 선생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무언의 멘토는 학생들의 해부 실습을 위해 시신을 기증한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학생들은 기증자의 삶을 알아보고 소개하며 유족들과 함께 극진한 예우로 3일 동안 의식을 치른다. 유족들은 해부 수술이 이루어지는 공간에도 들어가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유족과 학생들과 교수진이 함께 죽음과 삶을 배우는 뜻깊은 자리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 임종 후 의과대학에서 시신을 모시고 가면 나중에 연구가 다 마무리된 다음에 화장이 끝난 유골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였지만 ‘무언의 멘토’ 프로그램을 알고 나니 자연스럽게 엄마의 시신 기증 의사를 따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다음 문제는 구체적인 절차였다. 의과대학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인도 시기는 장례 절차에 맞춰 유족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안했다.
엄마 임종 후 가까운 사람들이 인사 드릴 기회가 세 번 있었다. 시신 기증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 먼저, 안치실 입구 방에서 엄마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인사를 했다. 의과대학에서 엄마를 모시고 가는 시간을 가까운 친척들에게 알렸더니 여러 분이 오셨다. 보통의 장례에서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입관 절차 대신 마련한 자리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중했다. 우리는 이동식 침대 주변에 빙 둘러서서 묵념을 하고 짧은 인사도 건넸으며, 운구 차로 들어가는 모습도 지켜봤고, 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했다.
두 번째 자리는 친척들과 친한 친구들과 함께 애도하는 추모식이었다. 모두 엄마를 알고 직접 만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한낮부터 저녁까지 추모식 공간에 머물며 조문객을 맞았다. 그 공간에는 엄마의 유품도 전시하고 생전 사진도 많이 볼 수 있게 준비했다. 유품과 사진을 보면서 엄마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 나눴고,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따뜻한 자리가 되었다.
세 번째 자리는 유골을 안치하는 의식이었다. 뜻밖에도 기증 후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의과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상의해서 안치 날짜를 정하고 의과대학을 방문했다. 되돌아온 엄마의 유골함이 너무 가벼워서 조금 놀랐다. 그만큼 엄마 마음도 가벼울 거라고 위로 삼았다. 이제는 가루 흔적만 남은 엄마를 도자기 유골함에 옮겨드리고 아버지가 계시는 자리 옆에 모셨다. 12월이었지만 포근했던 날이었다.
엄마는, 적어도 나의, 무언의 멘토가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