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손톱과 벙어리장갑

엄마와 치매와 함께 28

by 길 위에서

ㄴ요양원이 문을 닫는다는 통보를 받고도 거처를 정하지 못한 채 두 달이 지나갔다. 간호팀장도 어르신들이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나서서 알아보고 다른 요양원을 소개해 주셨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반쯤 체념하고 있던 중에 간호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자리가 난 요양원이 있는데 가 보겠느냐고 했다. 나는 당장 간호팀장과 함께 ㄷ요양원을 방문했다.


가을비가 엄청 쏟아지는 날이어서 주변은 살피지 못하고 지하 주차장을 통해 ㄷ요양원으로 바로 올라갔다. 입소자가 98명 정도로 규모가 컸는데 사무실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한 층에 있었다. 분위기가 독특했고 소란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너른 복도는 걸어 다니거나 소파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로 북적였고, 모두 알록달록한 개인 옷을 입고 있었다. 11년 되었다는 시설은 낡았으나 신경 써서 잘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일하시는 분들 얼굴이 다들 밝았다.


입소 상담을 했다. 간호사가 왜 옮기느냐고 물어서 나는 있던 곳이 문을 닫는다고, 지난번에도 같은 이유로 옮겼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ㄷ요양원이 문 닫는 일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맞기를 바랐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단박에 마음을 끝 것도 아니고 엄마가 말한 조용한 곳도 아니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다음날까지 결정해서 연락하기로 했으나 마음이 일찌감치 기울었다. 다음 날 아침에 결정을 전하고 서둘러 준비를 했고, 그다음 날 옮겼다. 이번 이송에도 사촌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ㄷ요양원은 앞의 두 요양원과 많이 달랐다. 세 구역으로 나뉘고 각각 담당 간호사가 있었다. 넓은 복도로 나와 활동하는 어르신들이 많았고 직원들도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방문 때마다 엄마 방의 담당 요양보호사가 달랐다. 매일 순환되는 모양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잘 잡혀 있는 체계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문 일지에 이름을 쓰고 방에 가 있으면 담당 요양보호사가 어떻게 알고 오는지 방으로 왔다. 그러면 나는 챙겨간 물품을 전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큰 차이 하나는 환자복이 아니라 개인 옷을 입힌다는 원칙이었다. 앞의 두 요양원에서 지낸 6년 동안 늘 환자복을 입었기 때문에 조끼나 추울 때 걸치는 겉옷과 내의만 개인 옷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개인 옷을 여러 벌 장만하고 챙겨야 했다. 게다가 ㄷ요양원의 이불, 침대 시트, 안전띠 같은 것은 모두 알록달록하고 다양했다. 똑같은 세트는 보이지 않았다. 산만해 보여도 병원이 아닌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동할 수 있는 어르신들은 원하는 경우 좌식 생활도 할 수 있었다. 참 특이한 요양원이었다. 아무튼 새로운 환경에 엄마도 나도 적응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ㄷ요양원이 고수하는 원칙 중에는 우주복을 입히지 않는다는 것도 있었다. 나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주복을 입게 된 이유가 있는데 어떡하느냐고 물었더니 간호사는 엄마를 잘 지켜보겠다고 하면서 개인 옷 방침을 강조했다. 앞으로의 일이 심히 걱정스러웠지만 엄마 옷을 준비해 갔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겼다. 엄마가 기저귀를 만지고 변을 묻히는 일이 일어났다. 방문 때마다 거의 매번 그런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괴로웠다. 나는 차라리 우주복을 입게 하고 싶었는데, 요양원에서는 그런 일 반복되어도 우주복을 입히지 않았다.


하루는 귤을 드리고 옆에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손톱 밑이 거무스름했다. “으악!” 물론 속으로 외친 소리였다. 변을 만진 흔적임이 분명했다. 물티슈로 엄마 손과 손톱 밑을 여러 번 닦았지만 다 없앨 수는 없었다. 손톱깎이를 빌려서 손톱을 짧게 깎아 드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 나오는 길에 당직 간호사를 마주쳤다. 나는 엄마가 변을 만지는 것 같으니 손톱은 좀 짧게 유지해 주시면 좋겠다고 부탁드렸다. 그다음에 갔을 때 엄마 손톱은 아주 짧게 다듬어져 있었다.


이날의 여파는 오래갔다. 며칠 동안 엄마의 손톱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괴로웠다. 그러던 중에 간호과장의 문자를 받았다. 엄마가 기저귀를 뜯고 변을 만지고 또 엉덩이를 긁어서 상처를 내는 일이 있는데 필요한 경우에는 장갑을 끼우겠다는 통보였다. 우주복을 입히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이 편하고 싶은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돌보는 입장에서도 그 편이 더 쉬울 수도 있는데 말이다. 시간이 더 지나 ㄷ요양원의 색다른 분위기를 더 잘 알게 되면서 그런 선택이 따뜻한 배려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요양원에 들어서니 색소폰 연주와 노랫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원봉사 공연단이 온 모양이었다.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중앙 홀을 지나쳐 엄마 방으로 갔다. 엄마는 등받이를 세운 침대에 앉아 있었다. 두껍고 커다란 벙어리장갑을 낀 두 손을 앞 테이블에 얌전히 올려놓고 있었다. 장갑은 노란 바탕에 오렌지색 꽃무늬가 있는 누비 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필요시 장갑을 끼우겠다는 말을 이미 들었지만 장갑을 끼고 있는 모습은 처음 봤다.


나는 먼저 간호사를 찾아가 장갑을 벗기고 과일을 좀 드리겠다고 말했다. 돌아와서 장갑을 벗기려고 하니 엄마가 오히려 다시 끼려고 했다. 손이 따뜻해서 좋은 모양이었다. “간식 먹게 벗자는 건데.”라고 말하며 엄마 앞에 귤과 바나나를 꺼내 놓았다. 엄마는 꼬마 귤의 껍질을 직접 벗겨 드셨다. 중앙 홀의 노랫소리가 크게 들렸다.


“시끄럽지는 않아?”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심심하지 않아?”

“여기 사람들은 다 자느라고 심심할 거 없다.”

엄마 대답이 날 잔잔히 웃게 했다.

나오기 전에 엄마와 한껏 껴안고 인사했다.

“엄마, 또 올게.””

“또 올 거 없다. 택시비 들잖아.”

“난 버스 타고 와. 엄마 보러 와야지.


지난 한 주 내내 마음이 뒤숭숭했는데 엄마를 보고 오는 발걸음이 좀 가벼웠다. 장갑을 끼고도 힘들어하지 않는 모습을 봐서 그랬나 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요양원이 문을 닫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