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경험을 기록하고 알리고 살아낸 당사자
대출하려던 책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그 근처 도서관 서가를 둘러보다가 다른 책을 뽑아 들었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이라는 책을 이렇게 만났다. 치매 환자가 쓴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저자 웬디 미첼은 영국 국민의료보험에서 20년 간 일했고 58세에 조기 발병 치매를 진단받았다고 했다.
치매는 뇌의 이상으로 생기는 질환의 ‘주변 증상’을 일컫는 용어다. 나는 엄마의 치매가 진행되는 과정을 15년 동안 옆에서 지켜봤다. 초기에는 화도 많이 내고 성격이 변하는 것 같았고 고집이 늘었고 예상치 못한 사고도 일어났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아, 우리 엄마 맞네.”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 분명히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투와 모습이 변했어도 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단서가 불쑥 드러날 때가 있었다. 그걸 정체성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가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전문가가 쓴 치매에 관한 책은 꽤 많지만 그런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몇 년 전에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치매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치매 환자가 어떻게 책을 써?” 친구 말도 틀리지 않았지만 내 막연한 바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조력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10년쯤 지나 웬디 미첼의 책을 발견하고 속으로 외쳤다. “이거 봐! 치매 환자도 책을 쓸 수 있잖아!” 웬디 미첼은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에 앞서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썼고, 마지막 책으로 《생의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그에게는 아나 와튼이라는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다.
웬디 미첼은 차매 증상을 안개에 덮이는 것에 비유했다가 나중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상태가 나쁜 날을 안개 낀 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 뇌가 합선되고 삶이 흐릿해지고 혼돈이 지배하는 순간들이다. ‘아지랑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은 것 같다. 그 단어는 연무가 다시 걷히기를 기다리면서 항상 그 아래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걷힌다.
안개와 아지랑이가 수시로 시야를 가리는 나날을 살아내기 위해 웬디 미첼은 핸드폰의 알람과 수많은 메모를 활용했고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했다. 치매 환자들과 연대했고 강의도 했다. 비록 요리는 직접 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마실 차를 직접 만들었다. 싱크대 수납함 안의 물건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짝에 내용물 사진을 붙여 뒀다. 딸이 이웃에 살기는 했으나 독립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며 살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행복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가끔 치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받는 부담감을 털어내고, 사람들이 여전히 필사적으로 돌리고 있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게 되어 순간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이 병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아내는 내 능력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치매에 걸리기 전과 같은 양식으로 행복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내일이 주말이거나 은퇴일이면 좋겠다며 미래를 위해 찾았던 행복은 분명 변했다. 이제 나한테는 행복이 작은 꾸러미로 온다. 지금은 무엇 덕분에 행복한가? 친구들에게 노래해 주는 새 한 마리를 보면서, 돌아다니려고 밖에 있으면서, 나무줄기에서 내다보고 있는 다람쥐를 잡으면서 내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날에 나는 행복하다.
이 말을 읽는 내 마음에도 기분 좋은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생의 마지막 당부》을 읽고 나서 웬디 미첼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고 알았다. 그가 지난 2월 22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자발적으로 음식과 물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끝을 선택했다는 사실. 아름다운 사람이 또 한 명 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