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아이와 아빠를 보며 죽음을 배우다
죽음을 다루는 영화는 많다. 영화를 떠올릴 때 안타까움과 슬픔보다 따스한 마음이 앞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하다. 누군가와 죽음에 대해 공부한다면 꼭 함께 보고 싶은 영화다. (이 글에 영화 줄거리와 결말이 나옴을 미리 알립니다.)
<노웨어 스페셜>이라는 영화다. 제목은 특별한 곳을 찾아도 그런 곳은 없다고 말하는 듯한데, 영화는 ‘스페셜’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의 감독인 우베르토 파솔리니는 홀로 죽은 사람들의 장례를 소재로 삼은 영화 <스틸 라이프>도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는 혼자 아들을 키우는 34살 아빠가 죽음을 앞두고 4살 아들을 입양할 위탁 가정을 찾는다. 영화에서 극적인 사건은 없다. 아빠와 아들이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그림책을 보고, 같이 장을 보고,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너 유치원까지 걸어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평범한 일상에 담긴 느낌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아빠와 아들의 사랑이 엿보여 여운을 길게 남겼다.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이 그지없이 부드러웠다. 아이가 잠옷을 안 입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딱 한 번 화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얼굴도 금방 풀렸다. 심술 난 아이가 제 방에서 물건을 밖으로 던지는 걸 바라보면서 혼자 빙긋 웃었다.
키 작은 아이는 창 아래 놓인 의자 위에 올라가 창밖을 내다보다가 의자에서 내려와 현관문 앞으로 갔다. 가만히 서서 문 손잡이를 바라봤다. 잠시 후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아빠다! 아빠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았다. 또 다른 장면에서 아이는 볼펜으로 자기 팔에 무늬를 그렸다. 아빠 팔을 바라보며. 아빠 팔에는 문신이 있었다.
처음에 아빠는 아들이 죽음에 대해 이해하길 원하지 않았다. 너무 어리니까. 그러나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등장할 수 있다. 공원에서 놀던 아들이 죽은 딱정벌레를 발견하고는 아빠한테 움직이게 해 보라고 하자 아빠가 말한다. 죽으면 움직이지도 먹지도 놀지도 않는다고, 모든 생명체는 행복하게 살다가 죽으면 몸을 떠난다고. 아들이 묻는다. “슬픈 거야?” 아빠가 답한다. “아니, 그냥 없을 뿐이야.”
입양을 원하는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 아이가 묻는다.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 아줌마가 답한다. “모르겠구나. 아무도 모를 거야. 한참 후면 좋겠구나.”
아빠는 마침내 아들에게 <공룡이 죽음을 맞이할 때>라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말한다. “딱정벌레처럼 몸을 떠났지만 숲을 날아다니고 있지. 머지않아 아빠도 몸을 떠나겠지만 항상 네 주변에 있을 거야. 공기처럼.” 또 말한다. “보이지 않아도 말을 할 수 있어. 마음으로.” 햇살 속에도 빗속에도 있다고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다. 아들이 묻는다. “포도에도?” 아빠가 답한다. “포도 속은 아니고 포도 맛 속에.”
네 살 아이와 나누는 대화 속에 죽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고, 그 설명이 내게도 위로가 되었고, 나도 그렇게 느
느꼈다. 엄마가 떠나신 후, 혼자 길을 걷다가 “오늘 날씨 참 좋지?”라고 중얼거렸고, 집안일을 하다가 “엄마, 이제 편하지? 나도 잘 지내.”라고 말했다. 엄마가 내 옆을 공기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지금도 가끔 엄마가 옆에 있는 것처럼 인사를 건넨다. 엄마가 손을 흔드는 사진 앞에서 나도 손을 들고 인사하기도 한다. 또 가끔은 “엄마!”라고 소리 내어 부른다. 내 목소리를 혼자 들으며 파동을 느낀다.
영화 속 아빠는 아들에게 남길 물건을 챙긴다. 입양 기관 직원이 권했을 때 거부했던 ‘메모리 박스’를 이제 차분히 준비한다. 그때 직원은 매일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실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결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라고 덧붙였다.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물건 하나하나에 보이지 않는 것이 꾹꾹 더해진다. 아들 돌 사진, 오래전에 떠난 엄마 사진, 유리 청소부인 아빠가 닳도록 쓴 모자와 청소도구, 그리고 편지 뭉치. 편지 봉투 하나에는 ‘운전면허 땄을 때’라고 씌어 있다. 이 보물 상자 덕분에 “연결되고 앞으로 나아갈” 아들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영화 막바지에 아빠는 긴 고민 끝에 위탁 가정을 선택한다. 무심한 듯 죽음에 대해 대답한 그 아줌마다. 아이를 위해 멋지게 꾸민 방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특별한 교육을 시키겠다고 강조하지 않았다. 16살에 임신했고 그 후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솔직히 이야기한 독신 여성이다.
어쩌면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이 실제로는 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