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생명이 교차하는 자리
엄마의 장례를 치른 후 만난 지인이 물었다.
“엄마 잘 보내드렸어요?”
내 입에서 “네”라는 대답이 바로 나갔는데 생각이 따라붙었다. 정말 잘 보내 드린 거 맞나?
지인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요?”
“울고 웃으며 보내드렸어요.”
이번에도 내가 아닌 딴 사람이 내 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답이 나갔다. 그런데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내 드린 거 맞네요.”
울고 웃으며 치르는 장례라면 잘 보내 드린 것이다. 이별의 순간을 단단히 준비했다 해도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만 느끼게 되는 감정들은 순간순간 눈물로 터져 나온다. 슬픔이 가득한 가운데에도 고인과 나눴던 따뜻한 마음과 기억 덕분에 웃을 수 있다면 그게 또 큰 위로의 선물이 된다. 지난 주말 내가 도우미로 참석한 채비 장례의 모습도 그러했다.
예정된 시간은 10시부터 12시까지였다. 가족과 친지 중심으로 서른 명 정도 모여 추모식을 할 거라고 했다. 고인의 배우자인 어머니를 모시고 몇 분이 일찍 오셨다. 막내딸이 장례 서비스를 검색하다가 채비 장례를 발견하고 신청한 모양이었다. 간식을 직접 다 세팅해서 챙겨 왔다. 대부분 달달한 쿠키였는데 그중에는 아버지 서랍에서 발견했다는 초콜릿도 있었다. 오래 편찮으셨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울지 않을 거라고 하는 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내가 다가가서 물었다. “안아 드려도 될까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꼭 껴안았다.
사람들이 한둘씩 모여들었다. 행복이 콘셉트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증손주 뻘인 아이들이 나타나자 추모식장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활기가 돌았고 사람들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다. 뒤에서 바라보는 내 눈에 그 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순환고리를 보는 것 같았다.
추모식이 시작되었다. 맏딸이 직접 쓴 조문보 글을 읽었다. 우렁차게 태어나신 순간부터 주무시며 돌아가신 순간까지 아버지의 일생을 꼼꼼히 정리한 내용이었다. 자식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신 분 같았다. 딸로 불렸다는 처조카는 큰딸을 자처하면서 두 딸들이 미처 말을 잇지 못할 때 나서서 추모식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할아버지와 목욕탕 가서 목욕 후 먹은 컵라면이 최고였다는 손자도 있었다. 큰사위는 추도사에서 장인어른이 미처 못하셨을 말을 대신했다. 마무리를 도와준 막내딸에게 감사 인사를,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때까지 가운데 자리에 굳건히 앉아 계시던 어머니께서 마침내 눈물을 쏟으셨다. 고인의 ‘최애’ 노래인 ‘하숙생’이 공간에 울렸고, 손녀가 피아노를 치며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불렀다. 목이 메어 노래가 나오지 못할 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빈자리를 채웠다.
추모식의 마지막은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위로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처음 헌화한 사람은 단에서 내려가 서고, 헌화를 마친 다음 사람은 앞서 헌화한 사람과 포옹하거나 손을 잡으며 마음을 나눈 후 그 옆에 서는 식이었다. 나는 고인을 마음껏 추모한 후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마음을 보듬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엄마 추모식 때도 온몸으로 나누는 위로가 좋았고, 추모식 사진을 나중에 봤을 때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게 또 좋았다.
추모식이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두의 얼굴에 차츰 웃음이 번졌다. 고인이 남긴 사랑과 생명 에너지가 그물망처럼 퍼져 나가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