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벼움을 받아들이다
내가 기억한 엄마 몸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움, 아니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되는 가벼움이었다.
엄마는 평생 마른 몸으로 사셨다. 치매가 진행되던 한때 몸무게가 훌쩍 늘어 바지 허리가 맞지 않는 상태가 되긴 했지만 그것도 한 해 남짓 유지되었을 뿐 다시 예전의 홀쭉한 몸으로 돌아갔다.
그런 엄마 몸의 무게를 내가 천근만근으로 기억하는 것은 욕창 수술을 받으러 입원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경험 때문이다. 온몸이 축 늘어지다시피 한 엄마를 휠체어에서 침대로 앉아 올리기만 하는 데도 진땀을 뺐는데, 팔에는 링거 줄이 달려 있고 허리 뒤쪽 수술 부위에 기기까지 연결되어 있는 엄마의 누운 자세를 두 시간마다 반대로 바꿔 드려야 하니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같았다.
퇴원하는 날 두 눈이 또렷해지고 안색이 맑게 변한 엄마 얼굴도 나는 기억한다. 욕창 부위의 심한 염증이 엄마의 정신을 더 혼미했음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입원실에서 씨름했던 무게는 꽤 오래 몸에 남았다.
반대의 가벼움은 돌아가신 엄마 몸의 무게였다.
돌아가신 직후 엄마 얼굴은 내 눈에도 편안해 보였다. 닷새 전 호흡 곤란으로 힘겨웠던 때의 일그러진 표정은 흔적도 넘아 있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기고 엄마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엄마 얼굴을 마지막으로 만져 봤다. 온기가 있었다. 임종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는 50분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내가 흠칫했던 것은 목 부위가 굳기 시작한 변화 때문이었다.
엄마를 영안실로 모시려고 오신 기사님은 이동식 침대로 엄마를 옮길 때 상체를 붙잡으면서 나더러 다리를 좀 잡아달라고 하셨다. 힘들 수도 있을 거라며. 힘들다는 게 무거울 수 있다는 뜻이었을까? 실제는 정반대였다. 종아리 쪽을 잡고 들어 올리는 순간 예상치 못한 뻣뻣한 가벼움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미 경직이 진행되고 있던 엄마 다리는 너무 가벼워 무게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가벼워진 엄마 몸의 무게를 또 한 번 실감한 때가 있었다. 엄마가 오래전에 약속하신 시신 기증 절차를 밝은 후였다. 대학병원에서 연구가 종료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를 모시러 갔다. 화장이 끝난 유골은 나무함에 담겨 있었다. 하얀 보자기에 싸인 나무함은 내 손의 힘이 무색하게도 가뿐히 들렸다.
15개월이 지나고 어제 알았다. 엄마의 마지막 무게가 믿기 힘들 정도로 가벼웠다는 내 기억에는 여러 감정들이 얽혀 있었음을. 얽혀 있던 것들이 서서히 풀리고 그 기억도 변하고 있음을.
기억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제 가벼움을 그저 가벼움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