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참 괜찮은 죽음>은 영국의 신경외과 의사가 쓴 책으로 원제는 ‘Do No Harm(해치지 마라)’이다. 뇌를 수술하는 의사가 환자와 가족을 위한 최선을 고민하며 삶과 죽음을 바라본 순간들이 25편의 글에 담겨 있다. 그중 딱 한 편만 언급할 터인데 우선 서문에서 내 시선이 머문 구절부터 옮기고 싶다.
“외과 의사는 때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다.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무시무시한 결과와 함께 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런가 하면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법 또한 배워야 한다.”
이 단락을 나는 여러 번 읽었다. 지혜는 냉철하고 또 따뜻하다. 저자는 정말 신뢰할 만한 의사일 것 같다.
‘참 괜찮은 죽음’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꼭지에는 저자가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암 환자인 어머니는 불치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2주가 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저자는 간호사인 누나와 번갈아 가며 어머니를 돌봐 드렸다. 두 사람은 어머니에게 꼭 필요한 간호를 하며 의논하고 지켜보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병원에서 죽음을 목격한 경험과 의학적 지식 덕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매는 어머니를 떠나보낼 준비를 수없이 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따금 감정이 격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우리 셋 모두 어머니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우린 어머니에게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드렸다. 숨은 동기 따위는 없고 허영심이나 이기심은 눈곱만치도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
어머니도 그 사랑을 충분히 느끼셨음이 틀림없다. 임종 이틀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랑에 둘러싸여 있다는 건 아주 특별한 느낌이야.”
이 특별한 이야기는 한국이든 영국이든 요즘 보기 힘든, 매우 예외적인 임종일 것이다. 저자도 이런 죽음이 “커다란 복”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괜찮은 죽음의 조건은 무엇일까?
며칠 전에 친한 언니와 통화했다. 실버타운에 계시는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이틀 동안 입원 간병을 하고 전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기운이 없어서 식당으로 가기 힘들었던 그날은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해서 식사도 좀 하셨는데 얼마 뒤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계신 것을 누군가 발견하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모셨다. 비교적 가벼운 뇌출혈을 두어 번 겪으셨는데 이번에도 고비를 잘 넘기셨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병원에 간 이상 이런저런 검사를 피할 수 없었다. 언니는 그 많은 검사가 다 무슨 소용일까 의문이 들었고, 검사를 위해 금식을 하고 소변줄을 꽂아 못 움직이게 되니 겨우 걸어 다니던 기력마저 급격히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어머니는 다행히 죽을 드시며 회복 중이시고, 한때 “여기가 어디냐?”라고 묻긴 하셨지만 의식도 또렷하시다고 했다. 언니는 어머니 말씀을 이렇게 전했다.
“실버타운이 다 좋은데, 한 가지 나쁜 점은 쓰러진 사람을 빨리 찾아낸다는 거지. 이번에 쓰러졌을 때 그냥 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큰 아들 내외가 오래전에 계획한 해외여행을 앞두고 고민 중이라는 사실을 아시고는) “어렵게 떠나는 여행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오게 내가 2월에는 살아있어야 해요."
말을 전하는 언니도, 듣는 나도 가볍게 웃었다. 마음이 쓸쓸하지 않았다. 언니도 어머니도 죽음과 이별을 잘 준비하고 계시는 듯.
다시 영국 의사의 책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죽음을 바라지만 “그런 복이 그리 쉽게 오지 않으리란 걸 잘 안다”라고 말한다. 저자라면 언니의 어머니께서 바라셨던 죽음을 복 많은 죽음이라고 볼 듯.
그는 덧붙여 말한다.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의 어머니는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멋진 삶이었어.”
나는 갑자기 벌어졌던 입을 천천히 다물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멋진 삶’까지는 아니더라고 ‘괜찮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늘 삶을 향해 질문을 건넨다. 괜찮은 삶?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서문에서 눈으로 밑줄을 여러 번 쳤던 구절을 보며 저자의 생각을 짐작해 본다. 실수하고 좌절을 겪어도 그 결과와 함께 하는 법을 배우고… 여기까지만 써도 버겁다. 나는 생각을 그만둔다. 무겁지 않게! 그냥 괜찮은 삶이라는 질문 하나를 품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