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는 천천히 더 천천히

새해 결심까지는 아니지만

by 길 위에서

하루 동안 빛난 태양이 기울고 있을 때, 2024년 마지막 일몰을 목격했던 장소를 지나가게 되었다. 언덕을 걸어 올라가 어둑어둑한 시야에 적응하며 그곳을 둘러본 순간, 내 입에서 "어허!" 하는 소리가 나갔다. 열 하루 전에 수십 명이 앉아 있던 벤치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 추운 날씨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날처럼 집을 향해 걸으며 날짜를 꼽아 봤다. 새해가 밝은 지 열 하루째 되는 날이었다. 도대체 새해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이 상태가 새삼 불편했다. 새해를 이렇게 맞아도 되는 거야? 그럼, 새해 결심이라도 해야 된다는 거야? 갑자기 웬 결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모두 내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그런 목소리와 함께 걷는 사이, 작년 11월쯤 마음에 담았던 단어가 생각났다. 그건 ‘천천히’였다. 그래, 앞으로는 천천히 더 천천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


그런 생각과 연관이 있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즈음에 목마르고 배고픈 당나귀에 관한 이야기를 어떤 책에서 읽었다. 목도 무지 마르고 배도 몹시 고픈 당나귀 앞에 먹이도 있고 물도 있다. 당나귀는 목을 먼저 축일까 배를 먼저 채울까 하고 둘 사이를 오가느라 어느 것도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그때 그 어리석은 당나귀에게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목마름을 먼저 해소하고 먹이를 먹으면 된다는 판단을 행동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내 경우의 문제는 순서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아주 단순한 부사 하나를 마음에 담고 살아보는 시도는 십여 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때는 한 해도 반 넘게 지나간 시기에 온통 뒤죽박죽인 일상의 부담에 허덕이다가 “대충대충’을 무슨 주문처럼 달고 살았다. 그 시기를 지나자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은 없어도 잘 버텼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매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해를 어떻게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부사 하나에 담아보곤 했다.


작년의 부사는 ‘꼼지락꼼지락’이었다. 거창한 거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거 조금씩 해보자는 뜻이었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인 덕분인지 브런치 글쓰기의 관문을 넘을 수 있었다. 겉은 미약해 보이는 ‘꼼지락꼼지락’의 숨은 힘을 나는 적어도 한 차례 경험했다.


새해의 목표나 결심까지는 결코 아니고, 새해 소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튼 내 마음을 ‘천천히 더 천천히’라는 표현에 담는다. ‘천천히 더 천천히’가 지금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이 솟아나니 기분까지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다. 사방이 무거운 요즘, 가벼운 것이 오히려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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