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지막 일몰

새해 맞을 준비는 아직 더디지만

by 길 위에서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건널목 앞에 서는 순간,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정면에 보이는 태양이 노란빛을 강렬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이 도시가 상당히 평평한 덕분에 아마도 지평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까지 떨어진 해를 볼 수 있었다. 눈부심 때문에 다른 길로 갈까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번잡한 거리를 서둘러 걷기보다는 조용한 공원길을 천천히 걷는 편이 낫겠다 싶어 고개를 떨구고 공원으로 향하는 구름다리를 올라갔다.


공원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언덕의 내리막길을 몇 결음 내려갔을 때, 수십 명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언덕에 줄지어 놓인 긴 의자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멀리 앞을 바라보자 조금 전에 봤던 태양이 있었다. 더 아래로 내려간 태양은 더 이상 눈을 괴롭히지 않았다. 2024년의 마지막 일몰을 지켜보려는 사람들이구나! 그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을 여러 생각과 감정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알 듯 말 듯한 느낌이 뱃속에서 가슴속에서 일었다. 사람들은 악몽 같은 한 해의 마지막 태양이 지고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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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정면의 태양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 내려갔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집으로 향했다. 그 길 도중에 한 차례 부산을 떨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신문 앱을 열었다.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한다는 기사를 확인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에 대해 내가 신경을 곤두세우게 될 줄이야!


저녁 시간, 단체대화방에 새해에는 평온하길 바라는 인사가 올라왔다. “무료한 보통의 하루가 그립다”는 친구도 있었고, “하루하루 누리는 일상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한 해였다”라고 말하는 친구의 글에는 ‘아보하’라는 답글이 달렸다.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뜻으로 2025년 키워드로 꼽혔단다. 나는 친구들의 인사를 읽기만 했다. 해는 분명 바뀌고 있는데 새해는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


4주 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찍었다. 수백 번 걸었을 그 길의 풍경이 갑자기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되는 대로 셔터를 몇 번 눌렀다. 여러 날 지나고 아주 답답하고 불안하던 날, 그때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 속에는 평범하고 소중하고 연약한 날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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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맞을 준비는 아직 더디지만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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