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 떠들어도 돼.
미국에서 산지 벌써 5년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영어로 완벽하게 어우러지기는 힘들다. 그런데 한 2년 동안 학생으로, 3년 동안 디자이너로 굴러다니다 보니 어느정도 감은 잡겠더라. 그래서 정리해 보았다. 디자이너로써 디자인을 발표할때, 그리고 피드백을 줄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표현들이다.
내 디자인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왜 이렇게 디자인을 했냐고 물어본다. 뭐 난들 알겠는가, 그냥 하다보니 이렇게 디자인이 되었는걸.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That’s a great question!” 이 문장 한마디로 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안해도 된다. 반드시 상대방이 내가 몰랐던 사실을 인지 시켜주었다는것을 강조 하기 위해서 약간 놀란 어조로 대답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피드백을 잘 받는 디자이너가 될 테고, 그 사람은 본인의 이야기가 먹혔다는 뿌듯함에 더 이상 연쇄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테다.
그리고 반드시 대화가 끝나고 나서 무언가 적는척을 해야 한다. 마치 그 사람의 질문이 중요한 피드백이 되었다는것처럼. 그러면 나는 생각 없는 디자이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디자이너로써 피드백을 받기 위해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해서 디자인을 했는데 비쥬얼이 엉망이다. 그리드에 얼라인은 안되어 있고 세부적인 내용을 생각해본적도 없다.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전체적인 아키텍쳐에 대한 구상이 먼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좀 생략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디자인을 보여주기 전에 한마디 던진다. "I want feedback on interaction, not on visual. Ignore details here” 어차피 이 회의 끝나면 바뀔것 아닌가. 구체적인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그래서 회의 시작하기 전에 깔고 들어가야 한다. 비쥬얼에 대한 피드백은 다 사전에 쳐냄으로써 다행히 나는 비쥬얼을 신경쓰지 않는 디자이너가 아니게 되었다.
디자인을 설명하다보니 나도 내가 뭔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드는 생각.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 사람들은 누구’. 그런 생각이 확 든다면 이 문구를 꺼내라. “What I am trying to say is…” 그리고 앞에 말했던 이상한 삼천포 이야기는 다 무시하고 처음 할려고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한 문장을 만들어라. 그러면 삼천포로 가려던 디자인 이야기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디자인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영어가 부족한 탓인지, 이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는건지, 어느 부분에서 혹시나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건 아닌지, 도통 모르겠다. 무슨 피드백을 주고 있는지 뭐라 물어봐야 할것 같은데 어디서 어떻게 어느부분을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잠깐 쳐다본다. 다들 뭔가 알아듣는 분위기다. (사실, 이럴때는 보통은 무관심이 대부분이긴 하다) 젠장. 나도 모르겠다. “Yeah, it makes sense”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적당히 알아들은척 넘길 수 있다. 그리고 상황을 아주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대처는 휴유증이 따라온다. 그 사람이 준 피드백을 알아들은 척 하고 나중에 고치지 않을 경우 피드백을 준 사람은 기분이 안좋아질 수 있다. 그 후폭풍을 방지 하기 위해서 잘 못알아 들었던 상대방의 피드백에서 아주 조그마한 실마리를 잡고서 아주 조그많게 고친 다음에 소심하게 고친 디자인을 보여주고 그때 준 피드백이 무슨 말인지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상대방이 디자인을 펼쳐 보이고서는 왜 저렇게 디자인을 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때 “넌 디자인 할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라고 말을 할 수는 없으니 “What is rationale behind that design?” 이라는 표현을 고급지게 구사할 수 있다. 특히나 UX디자인에서 논리나 근거는 중요시 되는 사항이고 그걸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을 들은 발표자는 기분나빠해서는 안된다.
발표자는 위의 질문을 듣고서는 이런 저런 설명을 늘어놓는데 좀 이상하다. 말도 안되는 근거를 제시하기에 바쁘다. 그때 “What I am reacting to…”라고 말함으로써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
위 질문을 들은 발표자는 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그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사용해서 허점을 툭 찔러줄 수 있다. 다른 케이스나 다른 관점을 위의 문장과 제시하면 좋다. “Have you thought about…” 생각해봤을 수도 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수도 있다. 만약 생각해봤다고 한다면 “That’s great”이라고 이야기 하면 될테고,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괜찮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갑자기 피엠이 내 책상을 찾아와서는 이런 저런 궤변을 늘어 놓는다. 별 도움도 안되는 이야기 인것 같고, 디자인을 딱히 고쳐야 할것 같지도 않다. 뭔가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피엠의 문제이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닌것 같다. 이럴때 딱 꺼내준다. “Got it, Thanks”
미국에서 고맙다는 말은 “이제 그마안~” 과 같은 뜻의 고급진 표현이다. 회의 하거나 이야기 하다가 고맙다는 말이 나오면 서로간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기 힘들게 된다.
이제 미국에서의 생활이 5년차가 접어든다. 맨 처음 왔을때 영어를 지지리도 못해서 햄버거 하나 시킬때도 뭔가 긴장을 바짝 하고 시켰었었다. 햄버거 안에 뭐를 넣을지 물어보는 질문에 “just plain please” 라고 대답해서 빵-고기-빵 외에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는 햄버거를 먹은적도 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숙제를 못알아 듣기는 일쑤였다. 철학적 디자인에 대해 매주 100단어 에세이를 썼을때도 ‘이건 뭔 소리야, 도통’ 이라는 후기가 나온적도 다반사였다.
6개월 정도 지났을때 즈음 용기가 생기고 나서는 미국인 클래스 메이트에게 조심히 질문을 던졌었다. “그래서, 숙제가 뭐래? 진짜 모르겠네”. 대답은 놀랍게도 “나도 모르겠어, 이상해” 였다. 그때 깨달았다. 내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그리고 말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 말하지만 영어가 아무리 유창해도 나는 못알아들을 수 있다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 말하는 사람에게 ‘나 못알아 들었어’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도 청자로써의 의무라고.
5년이 지난 요즈음에 들어서 깨닫는다.
쫄지마, 씨바. 떠들어도 돼
이제는 어느정도 영어가 더 편한 컨텍스트도 있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말이든 영어로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문화다. 바보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한국적인 문화도 그에 기인할 것이다. 미국의 미디어 보다는 한국의 예능과 미디어를 더 접하기 때문에 대화의 주제에 한계가 있는것도 그에 기인할 것이다. 항상 문제는 존재하며, 퍼펙트한 상황은 없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해야 한다. “쫄지마, 씨바. 떠들어도 돼”. 그래, 떠들어도 괜찮다. 뭐가 되든 괜찮다. 답답한것보다는 그게 괜찮다.
우리의 공포는 해보지 않은것에서부터 온다. 눈 질끈 감고 한번만 해보면 그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해방되는 경험이라니, 얼마나 이쁜 컨셉인가. 인생에서 날로 먹는다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일정 정도는 경험으로 커버가 되어야 한다. 깨져볼 각오가 있어야 하고, 깨어짐이 별거 아니라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러니, 쫄지말자. 한국에서 건너온 나와 같은 모든 외국인 노동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