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잘하는 디자이너 + 일 잘하는 디자이너
2016년 여름 즈음, 난 그야말로 회사일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었다. 개인적으로 이것 저것 신경써야 할 일도 많았었고, 회사를 다니는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헤메고 있었다. 30대의 오춘기 였을까, 나의 정체성을 회사에서 찾고 싶지는 않았고, 회사와 나를 동일시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 나는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했고, 에너지를 최대한 회사에서는 아끼고 내 개인적인 일만 신경 쓰고 싶었었다. 다른말로 하면, 내가 회사를 다닌다는 의미는 회사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금전적 제약 없이 하고 싶은 욕망이였다. 그러기를 수 개월, 깨달았다. 하나에서 에너지를 아끼고 다른곳에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것은 애초부터 불가능 하다는 것을. 하나가 안되면 두개도 안된다. 무언가 근본적인 삶의 자세가 무너졌다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그래 나는 자존심 상할 만큼의 인사고과를 받고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 했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기분은 꽤나 불편 했다. 그래서 최근 나는 괜찮은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했고, 주위 디자이너들에게 기회가 되는대로 물어보고 다녔다. 많은 이야기와 많은 인사이트들이 있었고, 그 이야기들은 지난 나의 경험과 버무려져 아래와 같이 종합될 수 있었다.
쪼작쪼작 디테일 디자인을 수정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옆에 앉아서 ‘이거 여기로 옮기고, 이런 UI넣어봐’ 라고 지시하면 중학생을 데려다 놔도 별 차이 없이 할 수 있을꺼다. 그런데 우리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조그마한 디자인들이 띠끌처럼 모이고 나면 어떤 모양의 조각상이 될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힘은 피엠의 아이디어를 비쥬얼적 목업으로 구체화 시킬 수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조각 조각의 아이디어들이 하나로 모여졌을때 어떻게 자연스러운 경험을 이룰 수 있을지 생각 할 수 있는것이다.
데드라인, 레드라인, exploration 등등 파트너들과 공유되어야 할 것들은 프로세스 안에서 너무나 많다. 이게 문서의 형태든, 디자인의 형태든, 프로토타입의 형태든, 말로 이야기 되어지는 형태든 파트너들이 뭘 기대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아니, 때로는 명확하게 이야기 해서 ‘나 언제까지 이거 해오면 되는거지? 오케이?’ 라고 제안할 수도 있어야 한다. 때로는 새로운 것을 제안할 수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모두에게 이미 공유된 디자인의 improvement일수도 있다. 그때마다 합의된 기대 사항을 서로 명확하게 체크하고 이해함으로써 따박 따박 해야 할 일을 똑똑하게 진행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가끔은 파트너가 기대하는 것 보다 아주 조금 더 해서 놀래키는것도 참 좋은 전략이다.
디자인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일은 디자인을 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내 디자인이 출시가 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내려면 내 디자인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꼭 겪어야 할 고초는 ‘왜 이렇게 디자인 했어? 다른게 더 나은거 같은데?’ ‘이거 개발할려면 엄청 오래 걸릴것 같은데, 좀 더 쉬운 방법 없을까?’ 라는 질문을 반드시 받게 된다. 그때마다 ‘아, 잘못 했어. 고쳐올게’ 라고 이야기 하는 디자이너가 인정받을 것인가, ‘아, 이거는 이런 이런 이유에 의거해서 이렇게 디자인 했는데? 상당히 논리적이지 않아?’ 라고 이야기 하는 디자이너가 인정받을 것인가. 항상 본인의 디자인을 뒷받침 하는 근거를 마련해 놓고, 위와 같은 질문들이 왔을때 그 근거들을 꺼내쓸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우기는 디자이너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기는 디자이너와 논리적인 디자이너의 차이는 단순하게도 그 디자인의 근거가 말이 되는가에 의해 판단된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대기업에서는 회사 혹은 팀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항상 센싱 하고 있어야 한다.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전체적인 방향에 따라서 내 디자인이 그 방향에 맞춰 어떤 퍼즐 조각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 항목은 시니어 디자이너와 주니어 디자이너의 주요적 차이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혼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면 이건 그리 크게 신경써야 할 바는 아닐테다. 그런데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고, 디자이너 업무의 특성상 혼자서 프로덕트를 런칭한다는건 불가능하다. 시키는것만 하는 디자이너를 넘어서 알아서 필요한 일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찾아낸 필요한 일이 회사의 전체 방향과 맞다면 알아서 일을 잘 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꺼다.
그리고 그 일을 찾았다면 먼저 디자인을 만들어 보고 팀 미팅때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공유해야 한다. 한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대는 디자이너 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좀 나대는 친구들이 그만큼 주목을 받더라.
자 이제 어느정도 알았다. 그럼 내일부터 나는 유능한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아니, 절대' 우리의 경험과 지식은 양 발과 같아서 지식만 쌓인다고 앞으로 나갈 수 없고, 경험만 쌓인다고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지식이 경험으로 커버가 되어야 하고, 경험이 지식으로 커버가 되야만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어느정도 앞으로 나가려면 어느정도는 경험으로 커버가 되어야 하고 이건 시간이 꽤나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또한, 모든 디자이너는 같은 환경과 같은 컨텍스트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 내가 생각 하기에, 전적으로 나의 경험에 의거해서 뽑아낸게 위와 같은 항목이라면 그대가 뽑아내야 할 항목은 다를꺼다. 회사에 따라서, 매니져에 따라서, 디자인의 종류에 따라서 디테일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위의 네가지만 지키면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냐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위의 네가지만 지키면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지금은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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