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을 통해서 메시지를 받았다. 아마존의 IMDB인데, 경력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은데 한번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요량이다. 포트폴리오에 요즘 공을 들여 업데이트를 했는데, 그게 쓸데없던 일들은 아니었나 보다. 잃을 건 없겠다 싶어서 한번 전화 통화나 하자고 했다.
좀 뭐랄까, 재수 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리쿠르터랑의 전화통화는 굳이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리쿠르터는 사실 어떻게 보면 job description이랑 job requirement에 따라서 글로만 그 직무에 대해서 알 뿐, 직접적인 지식은 없다. 그 말은 즉슨, 내 역량과 스킬이 직무와 얼마나 잘 맞느냐는 잘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리쿠르터는 내 작업들을 판단할 만한 지식이 없다. 말 그래도 리쿠르터의 역할은 좋은 사람을 적절한 자리에 데려가 주는 사람일 뿐, 내 역량과 스킬을 직접 판단하지는 않는다.
링크드인에서 나에게 연락을 줬을 때는 어느 정도 내 이력서와 그쪽의 직무에서 요구하는 게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 연락을 주지 않았을까.
시간이 되었고,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준비하지 않고 쿨하게 전화 통화에 임하려 했지만, 나는 어느새 최대한 나를 어필해보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한 마리의 새였다. 백그라운드를 최대한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최대한 프로젝트의 기여도를 부풀여 말하려는 나의 노력에, 혹은 나의 본능에 나도 놀랐다.
리쿠르터는 내 이력서를 하이어링 매니저에게 넘길까 말까를 나에게 물어봐 주었고, 나는 살짝 망설인듯한 어조로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 나도 밀당을 하다니. 이런 건 연예할 때나 잘 써야 했었는데 말이다. 내가 오랫동안 숙원 하던 직장이 아니어서 그런지,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이것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가끔 반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안됨 말고, 그러나 최선’이라는 태도가 사실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생각보다 빨랐다. 당장 다음 주 되는 날짜와 시간을 고르란다. 나는 날짜와 시간을 적어서 답메일을 보냈다. 하이어링 매니저와의 전화 통화 인터뷰다. 이제 준비다. 진짜로 이제 프로세스가 시작되어간다. 리쿠르터는 나에게 아마존 리더십 프린시플이라는 문서를 건네주며 잘 알고 있으라고 한다.
메모장을 켜고 양 손을 키보드에 놓고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요런 요런 카테고리로 준비해야겠다 싶었다.
- 백그라운드: '어릴 적에 자상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요 딴 거 하지 말고, 디자인과 관련된 경력 및 학교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도 경력만 1번, 2번, 3번, 나 괜찮지-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그 경험에서 뭘 배웠는지 키워드 및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 프로젝트 1번, 2번, 3번: 프로젝트에 대해서 줄줄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순서는 1번은 조금은 된, 직무와 관련 있는 걸로, 그래야 ‘뒤에 뭔가 더 괜찮은 게 나올 거야’라는 기대감을 줄 수 있으니까. 2번은 직접적으로 관련된 프로젝트로, 3번은 뭔가 마지막 한방, 임팩트를 날릴 수 있어야 한다.
- 예상 질문들: 아마존은 특히나 ‘어려움’을 겪은 경험에 대해서 많이 물어본다고 한다. 글라스 도어에 들어가서 질문들을 죽 복사 & 붙여 넣기 했다. 디자이너들이 받은 질문에 대해서 모든 걸 다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수집은 쉬우니까.
이제 해야 할 것들은 정리되었다. 모든 질문에 스토리를 채워 넣고, 프로젝트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채워 넣고 있지만, 페이스북이 생각난다. 친구들이 카톡을 보내온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집중이 안된다며 ‘내일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할 테야’라고 하고 잠이 들지만, 아침 기상은 8시. 바로 회사로 가야 한다.
그리고 또 다음날 집에 와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2페이지가 되었다. 포인트는 이거다.
'모든 것을 스토리화 시킨다.’
스토리의 기본 구조는 도입부에 콘텍스트를 설정 및 상황을 설명하고, 갈등을 소개한다. 그리고 갈등이 정점에 달 하고, 갈등이 해결되는 전환점이 생긴다. 그리고 대단원으로 이야기 내의 갈등이 해소되고 결말을 맞는다. 단순한 팩트라 하더라도 스토리화를 시켜 놓으면 어떤 질문이 나와서 끼워 맞추기가 쉬워진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웹 디자인을 단순화시켜서 피엠과 엔지니어들에게 프로포절을 하였다. 그런데, 피엠은 여기에 많은 것을 집어넣어서 사용자들이 많은 가치를 얻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피엠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숙고하고 고심하였다. 어떤 의사결정이 맞을까 고심하던 와중에 리서처에게 질문하였다. 그러니 리서처는 데이터를 주면서 ‘단순화된 디자인’ 쪽으로 가야 한다 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데이터를 피엠과 공유하였고, 함께 내린 의사결정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다’
이 스토리를 이런저런 질문에 끼워 맞춰 보자.
- 본인의 디자인을 어떻게 서포트하는가
- 협업을 어떻게 하는가
- 데이터를 본인의 디자인에 어떻게 사용하는가
- 리서처와의 관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위의 스토리를 약간의 핀트만 잘 잡으면 같은 스토리라 하더라도 위와 같은 모든 질문에 대답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비슷한 스토리를 많이 준비해야 한다. 만약 ‘what metrics you use to evaluate your design’이라는 질문에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모든 질문을 대답할 수 있는 만능 스토리는 없다.
이런 이런 스토리들과 위에서 말한 기본적인 설명에 대한 준비가 끝났다. (아니, 사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제 약간 실전 연습 차 존경하는 디자이너에게 부탁을 드려 모의 면접을 했다. 약 한 시간 동안 상대방이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고, 나는 준비한 대로 혹은 준비하지 않은 대로 대답하는 방식으로 연습을 했다.
모의 연습이 끝나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날 면접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었지만, 실상을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던, 내가 쓰는 단어이던, 모자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자야지.
다음날 아침, 회사 출근은 늦게 하겠다고 메일을 보내 놓고 집에서 전화를 기다렸다. 초조하였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제까지 써 놓은 스토리와 프로젝트 설명을 프린트해놓고 찾아가기 쉽게 표시해 놓으면서 마음을 위안시킬 수밖에 없었다.
전화가 왔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지만, 좀 긴장되어서 엄청 버벅거렸다. 느린 인터넷으로 재생하는 유튜브 영상처럼 생각에 버퍼링이 많이 걸렸고, 그 창피함을 무안하기 위해서 잘 안 들리고 끊기는 척했다. (사실 미국에선 이게 흔하다) 그러니 다시 걸겠다고 한다. 다시 전화를 받고 뭔가 안정감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뭔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생각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프로젝트 설명이 끝날 즈음에 시계를 보니 벌써 40분이 지나 있었다. (약속되어 있는 시간은 한 시간이다)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중간중간에 매니저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이 프로젝트에서 피엠들과 파트너와의 관계는 어땠는가’, ‘프로토타이핑 툴은 무엇을 썼는가’ 등등. 그리고 프로젝트 설명이 끝나갈 즈음에 디자인 관련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 본인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무엇인가요
- 디자인으로 통한 이노베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데이터를 본인의 디자인에 어떻게 사용하시나요
그리고 위에서 준비했던 것처럼 그냥 ‘의견’ 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서 대답을 하니 뭔가 먹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전화는 잘 마쳤다.
사실 면접이 끝났을 때 합격 당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감이 온다. 끝났을 때 ‘나 좀 괜찮은 놈인 거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 합격, 끝났을 때 ‘아, 좀 더 노력해야 하나 봐’라는 생각이 들면 실패. 다행히도 첫 번째 생각이 들었다. 전화 인터뷰라 커닝 페이퍼들이 한몫했다.
이제 다음 전화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다. 파이팅.
7월 12일 업데이트: 아마존 면접 2편이 업로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