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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Feb 27. 2018

디자이너가 혼자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하여

디자이너의 혼자서 하는 DIY공부법  — Part 1.

혼자서 공부한 지난 몇년

나는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어릴적부터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아니였지만, 지금 내가 하루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디자인’이 되었다. 산업 공학이라는 공부를 하고, Certification of Production and inventory management라는, 2개월에 한번씩 5번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취득할 수 있는 산업 공학 관련 자격증을 땃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결국 취직은 UI designer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이때문에 직장에 들어가서 적응 하려니 힘들었었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으니, 관련 지식은 전무한 상태에서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따라 잡아야 하는게 한둘이 아니였다. 결국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 한것도 그 점에서 였다.  


유학을 갈 것이 확정되고 나서,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샾 등 디자이너들의 전유물이던 툴들에 대한 지식도 무지하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내가 과연 디자이너들의 세계에 완전히 젖어들기 위해서는 무리라고 생각 했기에, 회사가 끝나면 열심히 학원을 다니곤 했다. 아마 컴퓨터 아트 학원 뭐 그런데 였던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채 두달을 온전히 다니지 못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 보다는 뭔가 커리큘럼에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맞추어 나간다는 생각에서 였다. “넌 이걸 배워야해. 넌 이걸 모를껄?” 라고 학원 측에서 계속 나에게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였다. 내가 혼자 공부하기 시작한게. 나는 내 시간을 내가 배우고 싶은것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유학을 오고서는 Time, motion and communication이라는 motion graphic수업을 들었을때였다. Motion graphic이니 당연히 Adobe After Effect를 잘 할 수 있어야만 모션 그래픽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가르치는 교수님은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존경 받는 70대가 다 되어가시는 원로 교수님이였는데, 그 교수님은  After Effect를 단 한번도 켜본적도 없는 교수님이 였다. 그저 영상만 보고 영상에서 전달하는 메세지, 분위기적인 코멘트를 해 줄 뿐이지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여기서 null object를 만들어서 parent관계를 엮어줘야지” 라는 말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 역시 모든 After effect의 테크닉적인 부분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알아서 혼자서 배워야 했다.  


디자이너라면 혼자서 알아서 배워나가야 하는게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툴들이 나오고, 그 툴들을 익히는건 온전히 내 책임이다. 디자이너들의 책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코딩도 배워야 한다는데, 누구에게 가르쳐 달라고 할 것인가. 새로운 스킬을 익히고, 변화되는 산업계에 발 맞춰 나가는건 온전히 내 책임이고, 혼자서 진행해야 하는 과제이다.  


지난 몇 년간 '혼자서' 배운 것들이 많다고 생각 한다. 위에서 말한 디자인 툴 뿐만이 아니라, 목공예, 가죽 공예, 뮤직 프로덕션, 비트 메이킹 등등 혼자서 집에서 소부작 소부작 이것 저것 하는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개인 수강을 찾아 배웠으면 시간은 훨씬 단축할 수 있었겠지만, 혼자서 공부하고 터득 하였으니 혼자서 무언가를 배우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지난 몇 년간 내가 어떻게 공부 하였는지, 혼자서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직접적인 사례와 함께 글을 써내려가 보려 한다. 나름 큰 주제인만큼 다음과 같이 두 개의 파트로 나눠서 글을 작성해 보려 한다.

  

Part 1. 디자이너가 혼자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하여  

Part 2. 디자이너가 혼자서 하는 DIY 공부법


어떤게 잘 하는거야?

디자이너는 ‘툴’을 항상 끼고 일을 한다. 스케치, 프레이머, 포토샾, 일러스트레이터 등 툴 없이는 디자이너의 생각을 펼쳐내는데 한계가 있다. 망치 없이 못을 박지 못하는것 처럼 말이다. 여기서 ‘’이란 무엇일까. 잠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보자.  


우리는 가까이 손 안에 있는 존재자를 ‘배려함’에서 사용 불가능한 것으로, [다시 말해] 특정한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것으로 만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작업 도구는 파손된 것으로 판명되고 재료는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난다. 도구는 여기에서도 어쨌거나 손 안에 있는 것이기는 하다. (…) 이런 사용 불가능성의 발견에서 도구는 마침내 우리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망치로 못을 박고 있을때 아무런 문제 없이 망치의 머리가 정확히 못의 머리를 때리고 있다. 이런 망치와 나 사이의 친숙한 관계가 바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배려함’의 관계 혹은 ‘손 안에 있는’ 관계 이다. 망치는 망치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고 있고, 내 손안에 있는 이상 우리는 망치를 다른 존재 혹은 내 세계 밖의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확장’으로 여기게 되고,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물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이는 '툴'을 사용하는데 있어 대부분 적용 된다. 테니스를 칠때 라켓을 인지하지 않고, 키보드로 타자를 두드릴때 키보드를 인지하지 않으며, 그림을 그릴때 펜과 종이를 인식하지 않는것 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망치나 툴이 부러지거나, 사용불가능하게 되었을때, 바로 이런 사태를 하이데거는 “가까이 손 안에 있는 존재자를 ‘배려함’에서 "사용 불가능한 것” 으로 만나게 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제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겠는가? 이 예제는 우리가 툴 혹은 어떤 스킬을 배울때 초보에서 숙련됨까지 가는 단계를 보여주고, '숙련되었음'의 정의를 어느정도 표현해 주고 있다. 우리가 처음 툴을 배울때는 이 ‘사용 불가능한 것’과 마주함의 연속이다. 불편할 것이다. 불편하고 내 손안에 들어오지 않는 툴 때문에 사각형 하나를 그리려 하는데 1분이 넘도록 사각형 툴을 찾으려 헤매고 있을 수도 있다. 이 툴을 배우는 과정, 즉 불편함의 과정의 연속은 결국 ‘내 손 안에 있는 관계’ 로 만들게 될 것이고, 어떤 특정 툴과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편함의 연속에서 ‘내 손 안에 있는 관계’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포인트이다.


두번째, 포인트. 가기 전에 한번 아래의 비디오를 시청해보자. 물론 악기에 해당되는 일이지만, 디자이너에게도 충분히 해당된다.  

출처: 앤서니 웰링턴 - 의식의 4단계, https://www.youtube.com/watch?v=7fgszIDQ0cs

다시 비디오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 — 내가 배워야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어떤것을 배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하는 상태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 — 스케일, 모드, 코드 등을 배우면서 학습 혹은 연습 해야 하는 것들을 알고 있는 상태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잘 못하는지를 아는 상태 — 어느정도 지식적 부분을 파악하고 자신의 색깔을 입혀 나가는 상태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잊어버리는 상태 — 자신의 스킬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상태


사실 디자인의 스킬을 쌓는 다는 것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 한다. 이를 한번 디자인에 적용해보자.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 — 이제 디자인계에 진입해서 무엇을 어떤 툴을 배워야 하는지, 어떤 스킬을 쌓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 멘토를 찾고,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여기 저기에 수소문 하며 다닌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 — 그래픽 툴, 프로토 타입, 코딩, 유저 리서치, 디자인 메쏘드 등등 배워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닌걸 깨닫는 상태. 학과 과정 안에서 몇년 정도를 배우다 보면 깨닫게 되고, 밤을 새기가 일쑤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잘 못하는지를 아는 상태 — 내가 그래픽이 뛰어난지, 인터랙션이 뛰어난지, 프로토 타입핑이 뛰어난지 어느정도 알고서는 그 길을 파고 내 색깔을 입혀 나가는 상태.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이 단계에 있다고 생각 한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잊어버리는 상태 — 쌓인 경험과 이론과 스킬을 기반으로 해서 디자인 툴과는 상관 없이 몇개의 스크린 정도만 보면 디자인에 대한 파악이 완료 될 수 있는 상태. 이때쯤 되면 툴은 중요하지 않고, 디자인에 담긴 생각과 경험만이 중요해진다.


동의 하는가? 물론 디자인을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것이 많아지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본인의 경험에도 이 4가지 상태가 말이 되는가? 본인은 현재 어느 단계에 있다고 생각 하는가. 물론 자신이 3번 단계에 있다고 해서 2번 단계를 졸업한건 아니다. 단계와 단계 사이를 왕래 하며 가끔은 2번 단계에, 가끔은 3번 단계에, 심지어 1번 단계에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자신이 잘 하는 무언가를 한번 떠올려 보아라. 그게 게임이 되어도 좋다. 처음에는 컨트롤러에 무슨 버튼이 총을 쏘는 버튼인지 몰라 헤메다가도 몇주를 그 게임과 함께 보내다 보면 상상치 못하는 테크닉을 발휘하기도 한다. 컨트롤러 혹은 조작법이 수면 위에 떠올라 있다가 점점 조작방법이 내 무의식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디자인 관련 스킬이 되었건, 어떤 다른 스킬이 되었건, 사람의 '숙달' 혹은 '숙련'됨의 기본적인 프로세스이다.


디자인 툴은 우리가 어떻게 디자인을 할지를 정의하며, 동시에 우리의 디자인은 디자인 툴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영향을 준다. 결국 툴은 툴일 뿐이고, 남는건 디자인이다. 최종 결과물을 보고 ‘이거 스케치로 만들었니, 포토샾으로 만들었니’ 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남는건 디자인이고 우리는 툴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툴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하고, 툴을 잊어버리고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하겠다.  


자, 이제 우리는 디자인 툴을 내 손안에 쥘때가 되었다. 디자인 툴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 지식 역시 내 손 안에 쥘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맘대로 주무르면서, 그 툴과 지식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자유로운 상태에 이를 수 있기를 희망하고, 나 역시 그 상태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자, 이제 어느정도의 마음가짐을 갖추었으니, 이제 다음편에서 좀 더 실용적으로 과연 혼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실제적으로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더욱 깊게 알아보도록 하겠다.  



본 글의 연재 글인 Part 2가 포스트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gilberthan/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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