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최근에 아내와 다퉜던 내가 집 앞 거리에서 아내에게 소리치며 했던 말이다. 긴 연휴 뒤에 회사에서 유난히 밀려있던 일들에 힘들었던 한 주였고, 가을 환절기의 칙칙한 하늘빛 토요일 오전이었으며, 아내 직장 사장님의 또 다른 사업 개업식에 가던 길이었다. 집 문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휴일 첫날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설레였는데, 그 기분이 끔찍 해지는데 단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겪는 일 중에 가장 큰 네 가지 예식(禮式), 관혼상제(冠婚喪祭). 내 나이 서른이 넘었지만, 어느새 그 네 가지 중에 절반 이상은 해낸(?) 것 같다. (사실, 제례는 앞으로 할 생각이 없다. 아버지는 이런 나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그 중 관례는 당연히도 내 인생에 크나큰 사건이긴 했지만, 내가 따로 노력해야 할 것은 없었다. 아니, 관례를 취업으로 본다면, 노력을 하긴 했지만 ‘내가’ 노력하면 그만이었다. 근데, 혼례. 가장 최근 시작하게 된 혼례, 이 것은 참 다르다.
대학교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한 내게, 소위 ‘팀플’은 일상이었다. 처음에 팀원들과 R&R(Role & Responsibility)을 정하고, 나의 Role에 맞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결혼생활도 좀 더 확장된 형태의 팀플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오산이었다. 아내와 5년간 연애하던 시절 크게 다퉜던 사건은 정말 한 손에 꼽힐 만큼 적었고, 나는 스스로를 아내와 정말 잘 맞는 사람이라고 여겼으며, 결혼생활은 물 흐르듯 순탄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마음 잘 맞는 팀원과 단 둘이 팀플이라니.
팀플은 해당 목표 과업을 달성하면 자동적으로 해산한다. 수 많은 말들이 오가던 단톡방은 순식간에 폐기되고, 각자 이 팀에서 구체적으로 원하던 것(아마도 학점이겠지만)을 얻고 떠나면 성공적인 팀플이 된다. 팀플 했던 팀원과 팀플 후에도 연락하는 경우가 있나? 있다 해도 백 중에 아흔 아홉은 그럴 일 없다. 그런데 결혼은 그렇지 않다. 이 팀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이 명확하고 구체적이지 않으며, 무엇보다 떠날 곳이 없다. 즉, ‘해산’이 없다는 말이다. 회사 언어를 좀 빌리자면, TFT가 아니라 상설 조직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와 느낀 바는, 결혼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 두 명의 결합이라기보다, 두 명의 사람이 지지고 볶아가며 하나의 몸처럼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 이렇게 치열하게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었던가? 연애도 남부럽지 않게 해보고, 동거도 몇 번이나 해 보았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동거는 적어도 결혼 10분 요약은 될 줄 알았는데, 30초 티저만도 못하다. 그래서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옛 말이 이렇게나 살갗에 와 닿는 요즘이다. 정해진 R&R 따위도 없다. 오히려 R&R을 하나씩 조금씩 살을 맞대고 정해 가는 과정이랄까. 그렇게 정해지는 R&R 마저도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프라이팬 부침개처럼 순식간에 뒤집히곤 해서, 결국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결국 그 날 아내는 플랫폼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눈물을 보였다. 결혼생활이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나도 물론 알게 모르게 힘들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 힘들지는 않았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나 힘들어했구나. 눈물보다는 웃음을 주고 싶었는데, 하며 꽤나 자책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결혼생활을 글로 좀 남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우리가 앞으로 가질 기나긴 시간 중에, 지금 밖에 없을 기념할만한 순간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못난 모습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는 이 글을 함께 톺아보며 함께 찍은 추억 테이프를 되감기 해보기 위해서. 또,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을 대한민국 30대 누군가들과 공감하기 위해서.
그러고 보면 앞에서 우리 팀의 R&R은 명확하지 않다고 했지만, 과업은 아주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듯 하다. 이 척박하고 무정한 세상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남기. 그게 우리 팀의 존재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