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땡땡 Nov 11. 2024

소설 하나_보통사람

 ‘보통’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느 한 지점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막상 그 지점을 입 밖으로 뱉고자 하면 금새 그것이 생각보다 넓은 범위에 가까움을 깨닫게 된다. 동전의 양면같이 각각 극단적으로 보이는 경우 조차도, 생각해보면 보통이라는 말 앞에서는 그냥 한낱 보통 동전일 뿐이다. 이제껏 한번도 가보지 않은 어딘가의 식당 메뉴에서 보통 매운맛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인터넷 쇼핑 중 마음에 쏙 드는 아이템이 있어 댓글 후기 좀 보려는데 단순히 별 세 개 보통 따위로만 적혀 있을 때, 입사한지 얼마 안 된 회사에서 고지식해보이는 직장 상사가 손님 맞이용 커피를 보통보다 좀 연하게 타 달라고 할 때, 그 깨달음은 현실적으로 몰려오게 된다.

 

“보통…… 이렇게 나오지는 않죠?”

 

 지하철에서 마주했다면 노약자석을 양보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게 되는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검정 옷을 입은 여인은, 본인이 답을 알고 있으면서 쑥스러운 듯 나지막이 남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릇을 내려놓는 오래된 손은 세월에 마모된 듯한 투박한 광이 나고, 멋쩍게 웃고있는 눈가에는 감히 눈물이 흐르지 않을 만큼의 깊은 골이 파여 있다.

 

“그냥…… 이 이가 바라던 거라서요.”

 

 남자는 쓸쓸한 웃음의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지는 여인의 혼잣말과, 지금 앞에 가지런히 놓여진 미역국과 수육, 대여섯가지의 반찬들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여인의 말을 구태여 곱씹어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애초에 미역국이라 함은 전통적으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대표하는 음식이 아닌가. 사춘기 때 여느 남자애들과 같이 그다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아버지와, 성인이 된 후 공중 목욕탕에서 각자 옷을 발가벗은 모습을 봤을 때의 느낌마저 이렇게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사실, 그저 미끄덩거리는 시커먼 미역이 힘없이 축 늘어진 채로 탁한 연둣빛의 국물 위에 둥둥 떠있다는 점이, 어쩌면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형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순히, 늦은 시각까지 사뭇 진지하다 못해 엄한 얼굴로 조문하는 빈객들의 주린 배를 따뜻하게 해줄 한 그릇 국이라고 생각하면 뭐 사실 특별할 것도 없다. 다만 이 어색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머릿속에서 억지로 두번 세번 되뇌어 보기 전까지는, 이 묘한 이질감을 마주해야 할 뿐이다. 남자가 서른 세 해를 살면서 아직은 몇 번 경험해보지 않은, 21세기 오늘의 누군가를 위한 이 마지막 세레모니의 자리는 꽤나 겸연쩍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의 삶에 유별난 특별함이랄 건 없었다. 남자의 성은 대한민국 대표 김, 이, 박 중 하나였으며, 이름마저 교과서에 수시로 등장할 정도로 흔했다. 대한민국 일반 가족들의 일상인 시덥잖은 걱정들이 주위 다른 집들에 비해 조금 더 있을까 한 정도였다. 사춘기 시절의 집안 형편으로 타입원 청바지와 에어포스를 한꺼번에 갖출 수는 없었지만, 급식비를 다달이 내는 것이 부담되지는 않았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발 냄새는 코를 찌르도록 고약하긴 했지만, 집에 영업용 트럭도 있었다. 집도 그 시절 기준으로 다소 낡았어도 동네에서 중간규모 정도는 되는 서울의 단층 주택이었고, 나름 마당도 있어서 어머니가 살금살금 가꾸던 작은 텃밭과, 그 옆에는 남자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심은 족히 삼십 년 이상 된 사과나무도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었고, 성적도 꽤나 좋았기에 적어도 학업때문에 부모를 걱정시킬 일은 없었다. 동네 근처에 있어 걸어 다닌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버스타고 20분정도 걸리는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늙은 괘종시계의 시계추처럼 느릿느릿 3년간 왔다갔다했다. 좋은 성적 덕에 스무살이 되어서 나름 괜찮은 대학교에 진학 했고, 다른 여느 대학생들처럼 왁자지껄한 1학년 생활을 보냈다. 보통의 남자들이 그렇듯 최전방 전선에서 2년 간의 겨울도 지나고, 학교로 돌아와서는 지옥 같은 취업시장을 준비했다. 처음보는 자신을 자신에게 소개하는 듯한 자기 소개서에 한 줄 더 적기 위해, 해외 교환학생이며, 인턴이며, 학술 동아리 등등의, 구태여 본인을 꼭 성장 시켰다고 남들에게 알려야만 하는 잡스런 놀이들도 빼먹지는 않았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운 좋게, 아니, 남자가 살아온 과정을 보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대기업 계열의 건설사에 입사했다. 물론 면접 때의 자기소개처럼 어렸을 때부터 건설업에 어떤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순히 연봉을 비교했을 때 타 업계에 비해 높은 편이었고, 마침 남자가 졸업할 때쯤 공채 모집 공고가 떴을 뿐이었다. 어렸을 적 철없이 꿈꾸던 소방관, 작가 같은 것들은 이미 남자의 삶의 방향에 있어 어떠한 동기가 될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나 서서히 회사 생활과 삶에 대한 권태가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 때 즈음, 남자는 건설현장으로 발령 받았다. 경기도 모처의 아파트 신축 현장이었는데, 무료해지고 있던 삶에 잠시 또 다른 자극이 됐다. 처음 마주하게 된 업무,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형성해야하는 인간관계, 특유의 현장만의 분위기, 이런 모든 것들은 일시적으로 권태를 느낄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더욱이, 이 때 즈음 지방 출신의 여자친구를 만나 서울 외곽 지역에 방 두 개의 전셋집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중고차를 매입해서, 주말이면 서울 근교로 나들이도 갈 수 있었다. 건설 현장의 특성상 새벽에 나가 늦은 밤이 되어 귀가하면, 먼저 집에 있던 여자친구가 정성들여 끓인 따뜻한 찌개 냄새가 거실에 가득했고, 음악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스피커에서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잔잔한 멜로디의 노래들이 차례로 흘러나왔다. 그 때의 노곤했던 밤은 결코 차갑지 않았고, 살림살이가 단촐했던 방 두 칸은 외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안정됨이 결코 완전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2-3년의 시간이 지나 다른 현장으로 발령이 나게 되면 그 또한 다른 하나의 반복에 불과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게 된 남자에겐 앞으로 도움보다는 짐 밖에 될 수 없는 나이 들어 버린 노부모와, 결혼에 들어가게 될 각종 자금에 대한 이자율이 걱정이었고, 월급이 또래에 비해 조금 많다고 해도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아버린 서울의 집값은 월급이라는 단어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한 아파트는 수천 채씩 똑같은 모양으로 짓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겠다는 소망은, 어렸을 적 바닷가 파도 앞에서 만들던 두꺼비집과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무료했다. 아니, 무의미했다. 반복되는 일률적 업무도, 통장에 다달이 꽂히는 월급도, 안정된 듯 보이기만 하는 삶도, 남자에게는 더 큰 무기력한 형태의 권태로 찾아왔다.

 

 누구에게나 잔인하도록, 매일은 매일 반복되어야 했다. 그런 삶 속에서 황과장을 만난 것은, 일산 모처의 현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새벽에 집에서 나오면 차 앞 유리에 성에가 가득 껴 있던 겨울날이었다. 남자는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하고, 현장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아침 조회 및 체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서류작업을 위해 자리에 앉았다. 본인의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방금 전까지 밖에 있다 들어와서 꽁꽁 언 두 손에 입김을 불며 녹이고 있을 때, 어떤 사내가 익숙치 않은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걸어왔다. 고개를 들어 동그랗게 된 눈으로 낯선 목소리를 좇았고, 본 적은 있지만 친숙하지는 않은 얼굴의 제법 다부진 덩치의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군데군데 먼지가 묻어 더러운 유니폼으로 봐서 현장 협력업체 사람인 것으로 보였고, 가슴팍에 달린 명찰은 그가 황과장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옆으로 죽 찢어진 얇은 눈과 항상 신경질 내는 듯한 양 미간 사이의 주름이 있는 남자의 인상과 비견될 만큼, 황과장의 이목구비는 크고 부리부리 했고, 전체적으로 웃고 있는 듯한 인상과 적당히 낮은 목소리의 표준어 섞여버린 사투리는 불혹 언저리인 그 만의 서글서글함을 도드라지게 했다. 남자의 업무 특성상 업체 사람과 직접 대화를 해야하는 일은 많지 않았기에, 그동안 오며가며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굳이 먼저 말을 건낸다던가 본인 소개를 한다던가 하지는 않았었다. 남자는 황과장의 상체를 숙여 내민 손에 손을 맞대어 가볍게 악수하며 인사했다.

 첫 인사를 계기로 남자는 황과장과 꽤나 많은 대화를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태우며 돈 잘버는 지인 이야기, 요즘 부동산 시장, 황과장이 요즘 하고있는 핸드폰 게임, 국가 경제와 나의 수입, 과거 연애사 따위의 공과사를 넘나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했고, 때때로 일과 후에 소속 상관없이 현장 사람들끼리 삼삼오오모여 근처 삼겹살 집에서 소주 한 잔씩 하기도 했다.  황과장은 남자보다 여덟 살 많았고, 아직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들 하나와 갓 돌 지난 딸 하나가 있었다. 본적은 본디 지방 어딘가의 시골인데, 가정은 본가 근처 시내에 꾸려놓은 채로 혼자 올라와서 원룸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대리님은 결혼 안하십니꺼?”

 

 황과장은 때때로 이렇게 질문 아닌 질문을, 의미가 있는듯 없는듯 하곤 했다.

 

“때 되면 하겠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지인에게 잘 지내냐는 질문 아닌 질문에, 응 그래 잘 지낸다는 답 아닌 답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 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잘 못지내도 잘 지내야 하는, 아니 잘 지낸다고 답해야 하는 틀에 박힌 상투일 뿐이었다. 명절이면 친척이나 가족들로부터 마치 남자가 <구독> 단추를 누른 것처럼 정기적으로 받는 이 질문은, 장소를 딱히 가리지는 않는 듯 했다. 그만큼 하릴없는 질문이고, 대답이었다. 황과장은 이런 남자의 무성의한 대답을 듣고 나면 항상 비웃음 같은 엷은 미소를 띄었다. 어이없는 듯한 조소에 기분 나쁠 법도 했지만, 딱히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조금 달랐다. 정체모를 화분들이 대충 놓여진 현장사무실 앞의 휴게 공간에서, 남자는 편의점 앞에서나 볼 법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황과장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순수 콘크리트로만 꾸며진 먼지 덮인 사무실 테라스 앞으로 늦은 봄의 꽤 강렬한 햇살이 쏟아졌다. 그 전처럼 힘 빠지는 웃음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으나, 그의 표정은 사뭇 점잖았다. 엷은 미소를 띄던 입술 사이로 몇 년 간 모아둔 듯한 큰 한숨처럼 담배연기가 뿜어졌고, 강직해 보이는 다소 굳어진 얼굴의 양쪽 눈은 찡그려져 있었다. 얼굴에 흩어져 있던 부리부리한 이목구비가, 강하게 내려 쬐는 햇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때 맞춘 만조의 바다처럼 얼굴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남자도 황과장도 상황을 살피는 듯한 침묵이 이어졌고, 남자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파하기 위해 입을 떼려고 하는 찰나, 황과장의 굳어진 굵은 목소리가 먼저 움직였다.

 

“같이 일 한번 해보시겠습니꺼?”

 

 남자의 사고가 아직 ‘일’이라는 낱말에 멈춰 있을 찰나, 황과장이 겸연쩍다는 듯, 찌푸린 눈을 유지한 채 다시 입술을 떼었다. 오히려 황과장의 입에서 구체적으로 대부업에 대한 말이 나왔을 때, 불안했던 남자는 왠지 안심이 되는 듯 했다. 황과장은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적게는 몇 만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원까지 돈을 빌려주고, 그에 대한 이자를 받고 있었다. 이자율은 당연히 제도권 보다 높았으며, 사채 중에는 그나마 양심적인 수준이었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3~4명씩 거주했기 때문에 황과장은 그들의 거주지도 줄줄 꿰고 있었고, 무엇보다 각 개인들에게 큰 돈을 빌려주는게 아니라서 원금 및 이자 회수에도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간혹가다 불량채무자가 나타나면 황과장이 따로 신경을 썼고, 며칠 추가로 일을 더 시키며 바로바로 일당을 원천징수 해버렸다. 게다가 덩치 좋은 황과장을 우습게 보는 사람도 적었기에 불량채무자가 나오는 일도 드물다 했다. 황과장은 남자가 본인의 일에 투자하길 바랬다.

 세계적인 어떤 경제 호황도 일반인들의 피부엔 와 닿지 않는 그런 시기였다. 현장에는 공정이 진행될수록 현장의 근로자들은 점점 늘어갔다. 즉, 황과장의 잠재고객들이 늘어갔다. 또 운영수수료를 제한다 치더라도 은행 적금 이자율에 비하면 아주 괜찮은 장사였다. 특히 리스크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 특히 남자의 마음에 들었다. 이 일로 떼 돈을 벌어 부자가 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살아 숨쉬는 이상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침 비상금 개념으로 모아둔 몇 개월치 급여가 떠오르기도 했고, 이미 다른 직원 일부도 함께하고 있다는 말에 남자는 황과장과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제없이 잘 흘러가는 듯 했다. 투자에 대한 보상은 기한을 꼬박꼬박 맞추어 남자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황과장의 표정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다만 딱히 본인의 수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계절이 한번 바뀐 어느 약속의 날, 약속을 조금 늦춰줄 수 있냐며 황과장이 입을 열어왔다. 남자에게 황과장의 불편한 표정이 그 일 때문이라는 것은 뻔해 보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장씨라는 한 근로자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연체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7백만원 정도 빌려줬는데 어느새 몇번의 추가 대출과 이자까지 포함하여 2천만원 정도였다. 약속한 돈을 못 받은 지 두 달 조금 안되었고, 약 한달 전부터 장씨의 일당을 매일 일정 금액 원천징수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씨에게 못 받은 대금은 그대로 황과장의 몫이 되어 대신 나가고 있었다.

 자연스레 장씨는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장씨는 황과장의 회사에 일용직 노동자로 고용되는 형태로 지난 겨울부터 출근했고, 일반적으로 쉬는 날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근무를 했다. 장씨의 일당을 보니 단순 보조 일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이 막노동판에서 그 나이에 보조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생에 굴곡은 있었겠으나, 그렇다고 특기할 만한 사항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대한민국 50대 같아 보였다. 다만 급여 통장의 명의가 여성인 것으로 보아, 신용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었는데, 그 정도의 문제는 이 바닥에서 너무나 흔했다. 장씨는 근무시간을 어기지도 않았고, 일과 중에도 티 나게 요령을 피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차림새도 출퇴근시에는 관리자처럼 깔끔한 단색 셔츠를 입고 다녔고, 청결도가 보이는 손톱 같은 부분도 손질되어 깨끗했다. 평소에는 공동숙소에서 지내다가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쉬면서 본가에 다녀오는 것 같았고, 퇴근 후에는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보다 혼자 조용히 지내는 듯 보였다. 황과장도 나름 장씨에 대해 조사를 해봤는데, 이전 경험도 전무하고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글을 쓰는 일을 하던 것 같다고 했다. 보통 장씨의 나이 대에 노가다 꾼으로 현장에 처음 나왔다는 것은 도박 빚 등의 급전 문제 따위의 이유가 있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없어 보인다 했다. 그나마 일과 중에 짬짬이 사람들이 말을 건낼 때면, 장씨는 짧은 답과 함께 그저 얕게 웃을 뿐이라서 동료들 조차 이 바닥 특성상 더 자세히 묻고 알아갈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이후로도 황과장이 수금관련하여 장씨와 몇 번 이야기를 진행한 듯 했다. 황과장은 다행히 장씨가 적어도 돈을 떼먹고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고 했다. 최근의 일당도 매일 원천징수 되고 있었고, 현금 2~3백만원씩을 갑자기 어디선가 들고와서 원금을 변제하고 있다고도 했다. 꾀병을 부린다던가, 추가 대출을 부탁한다던가, 공제를 미뤄달라던가 하는 등의 요구도 없다고 했다. 이쯤 되니 문득 남자는 장씨가 애초에 돈을 빌린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황과장조차 장씨로부터 대출 사유에 대해 따로 듣지는 못하였고, 듣자하니 향후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에 더 파고들지는 않았다.

 

 남자에겐 일산 사는 동기가 한 명 있었다. 본사에 근무하던 때에 꽤나 가깝게 지냈던 동기였다. 우연히 업무상 본사와 연락을 취하다 연락이 닿았고, 퇴근 후에 백석역 근처에서 모처럼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남자는 일을 마치고 현장 근처 직원용 숙소에 들러 샤워를 하고 준비해온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분 좋게 일곱 시에 맞춰 약속한 장소로 나갔고 고기 집으로 향해서 식사와 함께 반주를 들이켰다. 소주가 두 병 비워지고는 서로 어느정도 술기운도 올라왔고, 배도 찰 만큼 차서 무언갈 더 욱여 넣고 싶지는 않았다. 한 시간은 떼워줄줄 알았던 추억팔이도 삼십 분만에 동이 났고, 그 후엔 결혼, 주식, 투자, 부동산이 자리를 메꿨다. 다 큰 성인들의 대화는 항상 시작은 각자 다를지라도 결국 이렇게 흘러가곤 했다. 어느새 화로엔 다 타버려서 숯처럼 보이는 고기 한 점과 마지막에 시킨 돼지껍데기 세 점이 올려져 있었고, 고깃집 TV에선 9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일이 있는 직장인에게 9시라는 시간의 의미는 대학생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둘은 거리로 나섰고, 귀가 전 오늘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를 지을 겸 고깃집 앞에 보이는 녹색 간판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술, 담배, 고기냄새를 한데 뭉쳐 풍기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던 찰나, 남자의 눈에 낯익은 뒷모습이 들어왔다. 머리는 다소 희끗하고 카라가 있는 깔끔한 적갈색 셔츠에 검정 가죽 벨트를 동여맨 베이지색 면바지, 여타의 배 나온 중년의 사내들과는 다른 듯한 고유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그 사람은 창가를 바라보는 긴 좌석에 등을 보인 채 홀로 앉아,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채 통 유리로 된 창 밖을 바라보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아마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서 밤 하늘의 분위기를 누비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남자가 요란하게 울리는 진동벨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커피를 받고, 스트로우의 껍질을 벗겨 컵 홀더와 함께 컵에 장착하고, 앉을 자리를 찾고자 뒤돌아 섰을 때 그 중년의 사내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술기운에 헛것을 본 것 같지는 않았으나, 다시 떠올려 볼만한 중요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냥 비어있던 원형 테이블에 앉아 동기와 그 날의 이야기들을 마무리 했다.

 

 늦 가을 새벽 공기가 유난히 쌀쌀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남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5:50 알람을 기점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는 발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해 샤워를 했다. 밤사이 생긴 눈꼽들로 늘어붙어버린 눈꺼풀은 샤워기의 물이 닿고 나서야 제대로 떠졌고, 두꺼운 굳은살로 단단해진 발바닥은 차가운 화장실 타일을 밟아도 그 온도를 느끼지 못했다. 간단하게 시리얼을 우유에 말고 토마토 한 알을 꺼내서 흐르는 물에 박박 씻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출근 준비를 한 후 쌀쌀한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걸었을 때 전화가 울렸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안전팀 직원이었다. 그리고 정상근무 시간 외에 걸려오는 모든 회사 전화는 좋은 전화일 수 없었다.


아침부터 갑작스레 받은 전화였고, 예기치 못한 사고였지만, 왠지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 날의 새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가라앉은 새벽공기와 자동차에 자동으로 켜진 새벽방송 라디오 DJ의 차분한 목소리 때문일지도 몰랐다. 남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경찰과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구급차가 도착해 있었고, 사고 장소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출근하는 현장 인원들이 삼삼오오 현장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고, 최초 발견자와 안전 담당자는 경찰과 이야기 중이었다. 주위에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것인지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나 멀뚱히 바라보기만 할 뿐,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 사람들처럼 누구 하나 무서운 침묵을 깰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만 출근 중이던 인원들을 현장입구에서부터 통제하자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만이 들렸을 뿐이다. 남자는 안전담당자에게 다가갔고, 인상이 구겨진 채 경찰과 대화하던 안전담당자는 남자를 알아보곤 경찰에게 잠시 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장씨의 실족사였다. 어느새 남자의 관심에서 멀어진 그 장씨였다. 최초발견자는 협력업체에서 사용하는 일용직 근로자로, 보통 일용직 근로자들은 단체로 차량에 실려 출근하지만 이 근로자는 원래 사는 곳이 현장과 멀지 않아서 집에서 직접 출퇴근했다. 현장에는 보통 일찍 출근하는 편이었고,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이미 대여섯 명 정도가 출근해 있었다. 근로자들은 그날 작업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준비중이었고, 최초 발견자 역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자재들을 정리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104동 1층 전면 부 근처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고, 뿌옇게 먼지가 일었다. 최초발견자가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먼저 다가갔고, 본인 소속 협력업체 담당과장한테 전화했으며, 협력업체 담당 과장은 남자 회사의 안전담당자에게, 안전담당자는 경찰과 구급대, 그리고 나머지 현장 주요직원들에게 전화를 마쳤다. 안전담당자는 남자에게 유가족에 대한 대응을 부탁 하면서 본인이 얼마나 바쁜지, 앞으로는 얼마나 바쁠지 따위의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사실 그는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만으로도 이미 짜증이 났다. 사고경위 조사며, 산재 처리며, 본사 보고며, 언론 대응이며 처리해야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다. 그의 목덜미에서 머리로 이어지는 사이 부분처럼 애매한 위치에 여드름이 생기면 굉장히 크게 붓고 곪았는데, 막상 그 부분을 짜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고름은 생각 외로 정말 작았다. 그에게 사고란 어쩌면 그런 것이었다. 사망사고도 결국 수치화 되어 기억될 세상에서, 실은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가증스러운 가식을 떨어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들만으로도 이미 피곤해진 안전담당자는 피해자 유가족들을 만나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남자에게 넘기고 싶었다.

 

 남자는 장씨의 인적사항을 전달받았다. 황과장은 죄책감이 있는 사람처럼 겸연쩍은 표정으로 서류를 넘겼고, 서류를 넘긴 후에는 남자의 옆에서 담배를 피면서 장씨가 안타깝다느니, 며칠 전 갑자기 빌려줄 때 넣어준 봉투에 남은 빚도 그대로 넣어와서는 다 갚았는데, 그 성실하던 양반이 하루아침에 저렇게 될 지 누가 알았냐느니, 경찰이 자기를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은 본인은 그 시간에 출근하지도 않았고 우수고객에게 해코지 할 일이 없다면서, 남자의 맞장구만을 기다리며 누가 묻지도 않은 변명을 혼자서 나불댔다. 남자도 사실 황과장이 돈 때문에 장씨를 죽였거나 겁박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또 누군가의 타살이 아닌 것도 명백했다. 황과장 말마따나 평소 행실 자체가 성실하던 장씨에게 원한이랄 것은 없어 보였고, 영리한 황과장도 성격상 누군가를 죽음으로까지 몰 사람도 아니었으며, 새벽 104동앞 현장 CCTV에 찍힌 영상에는 분명히 장씨 외에 출입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도 CCTV를 확인하고는 실족사나 자살 쪽으로 무게를 두는 듯 했다. 하필이면 104동이 전날 고장 난 호이스트 교체작업으로 인해 층 출입구에 안전 난간을 걷어 놨다는 점이, 그리고 장씨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층에서는 별다른 것이 발견되지 않았고, 추락한 장씨의 물건들이 모두 장씨의 품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그나마 실족사 쪽에 초점을 맞추는데 한 몫을 했다.

 자살인지 사고인지는 추후 결론지어질 일이었고, 그 전에 남자는 안전담당자의 부탁대로 우선 유가족과의 관계를 형성해야만 했다. 남자는 황과장에게 도어락 비밀번호를 받아서, 커다란 종이 박스를 챙긴 후 경찰 한 명과 함께 현장에서 차타고 15분께 위치한 장씨가 머물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의 공동숙소로 향했다. 장씨가 사용하던 물건들과 유품들을 정리하기도 해야했고, 무엇보다 혹시 모를 중요한 메시지 같은 것들이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남자의 기대나 우려와 달리 공동숙소의 장씨 방에는 별다를 것은 없었다. 거의 다 쓴 듯한 로션, 치약, 샴푸 등의 생필품과 깔끔하게 개켜진 핑크색 이부자리, 단정한 셔츠 같은 두 벌의 옷가지, 발행된 지 오래되어 종이가 누렇게 변질된 소설책 두 권, 시집 한 권 정도가 전부였다.

 

“참, 특별할 거 없으신 분이네요.”

 

 동행한 경찰은 으레 그렇다는 듯이 짧게 한마디를 하고 상급자로 보이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남자가 짐을 쌀 수 있도록 허락했다. 짐 자체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자에 물건들을 차곡히 쌓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짐에 비해 너무 큰 상자를 가져온 것 같았다. 그렇게 포장된 박스를 남자의 차에 싣고, 경찰은 사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오늘 첫 담배를 태웠다. 오래된 아파트의 주차장은 넓고 고요했고, 내뿜은 담배연기는 아파트 동 사이의 높은 가을 바람에 빠르게 흩어져 갔다. 남자에게는 문득 지독한 갈증과 아득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짐을 싣고 유가족을 만나러갈 준비를 했다. 주소는 청량리역 근처에 위치한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몇 동 따위의 표시는 없고 몇 호의 숫자만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다가구 주택인 것 같았다. 가족이라곤 장씨 또래의 부인이 다 였다. 출발하기 전 갈증해소 차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기 위해 카페에 들렸다. 그 숙소 주위에 있는 초록색 간판의 카페, 남자가 일전에 동기와 함께 들렸던 카페였다. 카페 알바생이 늘 그렇듯이 반가운 얼굴로 남자를 맞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를 주문했다. 아침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서인지 주문한 커피가 금새 준비되었고, 남자는 마지막으로 출발을 알리기 위해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장씨의 서류에 적힌 부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장씨 부인이 이미 경찰이나 안전담당자에게 남편의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이나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연결음은 감정없이 규칙적으로 세번 울렸고, 이어진 1-2초간의 무거운 적막을 깨며 나이든 여성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수화기 너머 여인의 목소리는 그날 새벽 공기처럼 낮고 조용했다. 남편의 소식은 이미 전달받아서 알고 있었고, 사고현장에는 시신의 수습을 부탁하고 지금은 자택 근처 병원에서 남편의 장례를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 목소리와 어조가 너무 차분해서, 터져나올 울음이라던가, 깊은 회한의 한숨이라던가, 우레와 같은 분노 같은 반응만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의 마음이 오히려 떨려오는 것만 같았다. 보통의 경우엔 어떻게 된 사고였는지, 주위엔 누가 있었는지, 시신 상태는 어떠한지, 하다못해 보상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따위의 것들을 물어오겠지만, 여인은 마치 운명이라고 불리는 무자비한 폭력에 단 한 티끌만큼도 거스를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남자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본인이 운전을 못하기도 하고 하고있던 식당 보조일도 뒷정리하는 등의 준비해야할 일이 아직 남아있어서, 남자가 장씨의 공동숙소에서 챙겨온 박스의 물건들을 장례식장으로 직접 가지고 와줬으면 하면서 미안해했다. 전화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이 났지만, 창 밖의 늦 가을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아침거리는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전화를 끊은 남자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고개를 드니 거기엔 높고 맑은 가을하늘 대신, 건너 블록에 한창 신축 중인 회색의 아파트 골조 구조물 벽만이 당당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다시 남자의 앞자리로 여인이 와서 조용히 앉았다. 식장은 친지들이 연락을 받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탓인지 아직 한산했고, 한산한 식장은 장씨가 남겨둔 유품 박스와 꽤 잘 어울렸다. 이제 보니 오는 길에 집에 들려서 급하게 갈아입고 온 까만색 양복과 넥타이에는, 장씨의 유품을 전달하느라 들었던 박스에서 옮겨 묻은 회색 먼지들이 묻어 있었다. 남자는 옷에 묻은 먼지를 발견하고 가볍게 툭툭 털어 냈으나, 먼지는 언제나 그렇듯 지워지기보단 까만색 속으로 엷게 스며들어 갔고, 건너편의 여인이 다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 이는…… 어땠나요……?”

 

 남자는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몰라, 침묵을 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그이가 이상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이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누군가는 반드시 살 이유가 없어서 죽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냥 살기도 하잖아요. 그이는 살아야할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이도, 그냥 그런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어요.”

 

 여인이 말을 마칠 때쯤 부인의 안위를 묻는 걱정가득한 목소리들과 함께 한 무리의 일행이 방문했고, 장씨 부인은 남자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빈객을 맞이하러 갔다. 남자의 앞에는 여전히 아직 손대지 못한 음식들이 처음 모습 그대로 있었고, 미적지근해진 미역국 표면에 연하게 피어나는 김만이 아직 조금 남아있는 온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남자는 문득 미역국 위를 둥둥 떠다니는 노란 기름에 순간 구역질이 났고, 토악질을 억지로 막으려는 듯 숟가락을 들어 미역을 한가득 입에 욱여 넣었다. 미끈하고 입안에서 몇 번 질겅거리던 미적지근한 미역은, 몇 번 씹히지도 않은 채 남자의 목구멍 길을 죽 타고는, 꿀렁꿀렁 잘만 넘어갔다.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