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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다섯_님과 나의 연결고리

by 길땡땡

기운이 없었다. 온몸이 중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물에 젖은 싸구려 폴리에스테르 스웨터 마냥 축 늘어졌다.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깔끔하게 완료했다며 친절히 설명해주신 옆구리와 명치 바로 아래 부위는, 마취에서 깨어난 직후임에도 이따금씩 찌릿했다. 약 40시간 넘게 금식을 하고, 물조차도 못 마신게 10시간은 족히 지났을거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는,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가는거라고, 밥만 잘 먹어도 보약이라며 밥을 떠먹이던 부모님의 기억이 스쳐가는데, 의사선생님은 앞으로 두시간 더 굶고, 그 후엔 죽만 먹으라고 했다. 가뜩이나 두시간 더 굶어야 되는 것도 억울한데, 내키지도 않는 죽을 먹으라니. 건강검진 끝나면 제일 좋아하는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겠다던 20시간 전 즈음의 내가, 괜시리 원망스러워져 한숨과 함께 고개를 몇 번 저었다. 수속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철로의 규칙적인 소음은, 유난히 그날따라 귀에 거슬리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비어있는 내 속만큼 공허해졌다.

건강에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아니, 결과적으로 자만했다.). 헬스장에 가는 것이 회사에서 받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취미가 된지 몇 년째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어우, 운동하시나봐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내 나이 대에 주기적으로 주 4~5회, 한 두 시간씩 운동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운동 루틴에는 근력운동뿐만 아니라, 유산소, 유연성 운동도 꼭 병행해서 체중 뿐아니라 골격근, 근신경계, 심폐지구력을 비롯한 몸의 전반적인 균형을 추구했다. 아내 말에 따르면, 내 유튜브 추천영상들은 운동, 역사, 영화로 삼분할 되어있어 “너무 핵노잼” 이라 한 지 오래였다. 모임을 자주 가지는 편도 아니라서, 술도 일주일에 1~2회 정도 마시고, 주말에 집에서 아내와 밀려있던 연애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안주도 없이 맥주 두 캔 정도 홀짝홀짝 마시는게 전부였다. 그런 나는 남들에 비해 건강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아니, 이론적으로 건강해야만 했다.

코로나와 잦은 출장 등등의 이유 때문에 미뤄놨던 건강검진을 약 3년만에 예약했고, 대장내시경 검사는 처음으로 받게 되면서 검진 3일 전부터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다. 보통 40대부터 검사를 시작한다지만, 최근 유튜브에서 “식생활의 변화로, 대한민국 20~30대에게도 대장암 발병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영상을 얼마전에 우연히 보게 된 게 이유가 됐다. 혹시나 건강검진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3일전부터는 맥주한잔 먹지 않고 대장내시경에 방해될까 안내대로 소화가 느린 생 채소, 깨 등의 음식도 먹지 않았다. 검진이 오전 시간이라 검진 전날에는 점심으로 흰죽만 먹으라고 하기에, 지금껏 해오던 간헐적 단식(16:8)을 한 번 좀 더 빡세게 해보자는 생각에 아예 하루를 통째로 굶었다. 저녁시간부터 대장을 비우기 위한 약제를 먹기 시작했고, 검진 당일 새벽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완벽한 준비라 스스로 자부하며 검진결과를 기대했다. 평소에도 이정도 건강을 챙기는데, 건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매일같이 술을 먹고 운동은 절대 안하는 옆 부서 선배들도 너무 건강하다는데, 하루의 강아지 산책으로 모든 운동을 대신하는 내 친구도 아주 건강하다는데, 나는 당연한거 아닌가?

새벽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결코 무겁지 않았다. 배는 고팠지만 약제를 새벽부터 먹다보니 ‘뭔가 지금 당장 먹어야겠다.’ 라는 식욕은 떨어진 상태였고, 검진은 보통 2~3시간 정도 걸릴테니, 검진 끝나고 맛있는걸 먹을 기대에 들떠 있었다. 비교적 한산한 지하철 안 내 이어폰에서는 랜덤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제목과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돌의 노래들이 연거푸 흘러나왔고, 내 머릿속엔 종로에 새로 알게 된 맛집을 갈까, 동네의 “최애” 맛집을 갈까, 오늘 쉬는 날이면 어떡하지, 회사에서 날 찾을 일은 없겠지, 하는 따위의 무의미한 생각들만 가득했다. 노래의 가사들만큼 내 생각의 휘발성도 강했던지, 어느새 나는 수검복을 입고 첫 검진 항목을 안내받고 있었다.

“대기자가 많아서, 기초 검진항목부터 받으시고, 바로 내시경 검사 받으실게요.”

‘받으실게요는 좀 이상한 말 아닌가. 받으세요도 아니고, 받을게요도 아니고 받으실게요라니.’라는 피상적인 의문을 잠시 품고는, 아래 층으로 내려가서 검진을 시작했다. 헌데 검진 시작부터 결과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재더라도 항상 정상이던 혈압은 고혈압 기준보다 살짝 낮은 수치가 나왔고, 가뜩이나 눈뜬 장님같은 시력은 교정시력임에도 불구하고 3년 전보다 꽤나 나빠져 있었다.

“음, 수치가 좀 잘못나왔을 수도 있는데, 혹시 다시 재드릴까요?”

조금 충격을 받은 내 표정을 그 짧은 새에 읽어버린 건지, 이렇게 상냥하게 물어오는 간호사에게, 나는 그냥 괜찮다고 대답했다. 거기엔 속마음을 순식간에 읽혀버린 당혹감과, ‘이 정도는 노화의 과정으로 누구나 자연스럽게 나빠지는거 아닐까?”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다시 측정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모두 섞여버려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다. 아직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점멸하듯 생겨나고 사라짐을 반복할 때, 나는 어느샌가 동의서 작성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약물이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음… 제가 총 2개의 혹을 발견했구요, 여기 보이시죠? 이건 크기는 작은데 평평한 모양이라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서 여기서 바로 제거가 불가능해서요. 병원 연계시켜드릴 수 있는데, 거기가서 바로 제거하세요. 속 비운 김에 하시는 게 편하실거에요.”

깨어난 나에게 담당 의사선생님은 빨리 발견해서 참 다행이라는, 그래서 조금은 스스로가 뿌듯해보이는 목소리로 말해왔다. 마취의 영향으로 정신이 없던건지, 그냥 너무 많은 설명과 절차들을 순식간에 들어버려서 정신이 없었던건지, 마치 다시 한번 마취되어 버린 것처럼 그 다음 이어지는 일들이 살갗으로 느껴지기도 전에 순식간에 지나갔다. 을지로에 위치한 건강검진한 병원에서 진단서를 가지고 다시 강남에 위치한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서, 다시 동의서를 쓰고, 다시 마취를 하고, 다시 깨어났다. 이 모든 행위들은 2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그 동안 내 머릿속엔 온갖 잡생각들만 점멸했다. 오로지 병원을 이동할 때 생각보다 쌀쌀해진 한 낮의 날씨에 한번 놀라고, 이동한 병원에서 수술 중에 마취를 뚫고 통증이 느껴져 또 한번 놀랐을 뿐이다.


그렇게 수술 후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괜시리 풀이 죽어있던 나는, 유전적으로 나와 가장 닮아있을 누나들이 있는 카톡방에 메시지를 적기 시작했다.

“나 오늘 대장내시경 했는데 혹 2개나 나와서 수술하고 왔어. 가족 중에 대장암 걸린 사람도 없는데 무슨 30대 중반에 혹이 두개나 있냐.”

건강에 신경쓰면서 산다고 살았는데 조금 억울하기도 했고, 주변 친구들은 대장내시경하면 다 깨끗하다는데 왜 나만 이런건가 싶기도 했고, 간헐적으로 콕콕 찌르듯 아픈 수술부위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뭔소리야. 외할머니 대장암이셨잖아.”

“아 그래?”

“ㅇㅇ. 외삼촌도 그래서 맨날 대장내시경 할 때마다 용종 뗀 대. 어떻게 이런건 또 귀신같이 닮나 몰라.”


내가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돌아가셨던 나의 외할머니.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돌아가셔서 임종을 지키지도, 장례식에 가보지도 못했더랬다. 끊겨버린 하늘 길들로 인해 한국으로 오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고, 엄마는 그런 내게 너 올 때쯤이면 이미 장례식 끝나 있을거라며, 오지말라 했다. 해외로 출국하기전에 외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은건 알고있었지만, 연세도 많으셨기에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만 여겼고 정확히 어떤 병을 앓고 계셨는지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가깝지 않게 느껴져서, 어렸을때만 외할머니와 몇몇 추억이 있고 어느정도 자란 이후론 그냥저냥 지내서, 외할머니의 건강이 안좋아지는게 내 탓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던건 아니다. 다만 외할머니의 건강은 엄마, 이모들, 외삼촌의, 혹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들과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외사촌들의 일이라고만 여겼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부끄러웠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내 몸에서 떼어내버린 종양 두 덩어리가 어딘가 모르게 친근해졌다. 찌르르한 통증들도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외할머니의 유산.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것. 내가 외할머니의 가족이고 외할머니가 나의 가족이라는 증거. 이제는 떨어져있지만, 또 붙어있기도하다는 증거.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가고있다는 증거.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

마침 지상으로 나온 지하철 창 밖을보니 날이 참 좋았다. 하늘은 맑고 구름이 높았고 한강의 물결은 볕에 파르르 떨리며 출렁출렁 흘러갔다. 아마 그 일렁이는 강물에 그날의 내 고통들도 씻겨 내려가버린 걸까. 왠지모를 웃음이, 스르륵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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