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후 첫 출근, 비용처리를 위한 보고서가 아닌 직속 상사에게 보고할 보고서의 작성이 늦어진다. 녹음 길이만 10시간 3분 11초. 녹음과 촬영된 사진을 번갈아 보며 추리는데 하루로는 부족하다. 내가 정한 하루 커피양도 벌써 바닥난다. 그렇다고 오늘을 살아내는데 내일의 것을 당길순 없다.
연구 여정을 이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연수까지 받고 온 이들. 그들의 일 년의 성과가 아닌 어쩌면 연구생활 전체의 성과를 요약하여 우리에게 전한다. 논문 속 정제된 글이 아닌 본인의 생각을 말로 전해 듣는 일. 꽤나 솔직한 이야기들. 여러 번 검증을 통해 입증된 '사실'에 덧붙여진 실험 당시의 '느낌'을 전해 듣는다. 단편의 논문으로 끝나는 성과가 아닌, 지금의 논문이 되기 위한 그간의 여정을 듣는 건 참 재미있다. 이런 느낌을 전해주는 연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연자도 있다. 아니면 내 이해의 한계일 수도.
무대 위에 오른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기조연설자'가 아님에도 부득이 온라인으로 강연을 하는 사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불참석한 뒤 대타 연자를 보낸 사람. 하지만 대타 연자의 부족한 설명에도 집중을 놓지 않는 청자들이 있다. 아직 학위 과정임에도 발표기회를 부여받은 학생들. 그들의 심장 떨리는 음성을 나도 심장 떨리며 들었던 것 같다.
그들의 발표가 끝나고 "질문 있으십니까?" 란 물음에 몇 번이나 엉덩이를 떼었다 붙였다. 그리곤 다른 질문자들의 사려 깊은 말투를 듣는다. "제가 잘 이해를 못 한 걸 수도 있는데요, OO 부분을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 연자는 예쁘게 받는다. "굉장히 핵심적인걸 물어봐 주셨는데요..." 나도 다음을 기약해 본다.
이런 순간들이 제외된 사실들을 보고서에 적시한다. 나의 순간은 일기로 남는다.
"이틀간 진행된 OO학회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직접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학회 시즌이라 참석자가 많지 않다는 학회장님의 말이 있었지만, 여러 교수님의 강연을 듣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기조연설이 아닌 일부 세션 연자분들도 온라인으로 강연을 진행한 점이 다른 학회와 달랐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현재 동향은..., 의사와 기초과학자들이 달랐던 점은..., 기타 흥미로운 사실들은...
이번 학회를 통해 현시점의 연구동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향후, 녹음 파일 및 촬영 자료를 종합해 사실 중심의 정리 보고서를 작성/보고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