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기로 마음먹은 목표를 생각하며 수첩을 들췄다. 올 6월의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참관인의 하루, 그날 일기가 보인다. 당시에는 [회사원]이란 카테고리가 없었던 때. 오늘 [회사원] 카테고리에 일기를 써본다.
타인의 삶의 현장을 지켜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영화나 드라마, 소설책에서 1인칭 시점으로 접한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다.
어제는 사전투표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투표소 참관인 자격으로 하루를 보냈다. 사전투표소에는 투표를 진행하는 관리관, 투표소를 지켜보는 참관인, 투표를 하러 온 시민. 이 세 역할이 조용한 긴장 속에서 공존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질 무렵, 관리관들과 참관인들은 조금씩 본래의 표정을 드러냈다. 참관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잠깐 정적이 흐를 때, 저 멀리 반대편에 앉아 있는 관리관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그사이 관리관이란 '새 옷' 속의 공무원이라는 '직장인'으로서의 모습이 스며 나왔다. 평소 내가 접한 공무원은 민원인을 상대하는 무표정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투표소에서 마주한 그들은 저마다 어제의 저녁 식사 이야기와 다음 주 연차 계획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나이 지긋한 관리관과 하루 종일 종횡무진하던 중간 관리관이 한쪽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종횡무진을 내심 감탄한 하루를 보냈기에 약간의 궁금증이 일었고, 대화가 토막토막 들린다. "과장님. ~. ~에는 진짜 쉬어도 되죠?? 진짜죠??"...
멋들어진 정부건물 속 어느 과장님 방 안에서 펼쳐졌을 실랑이. 이토록 생생한 장면에 사놓고 보지 않은 '삼국지 처세학' 책을 이제는 진짜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 노동자’로서의 기능적인 나와, 애교 섞인 나를 비교해 본다. 근거와 재현성을 중시하는 내 일의 방식을 많은 인간관계에 적용했던 내 모습이, 어쩌면 너무 순진했는지도 모르겠다. 몇 번의 착오를 지체 없이 바로잡던 그. 그의 종횡무진에는, 필살 애교가 늘 곁들여져 있었을 것이다.
나의 태세를 바꿔 처세술로만 헤쳐 나가면 좋을까란 마음이 분다. 없던 처세술이 바로 생기진 않을 것 같지만, 생기는 바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에게 부족한 기능적 부분은 언제나 반복해서 다져야 한다는 생각에 별표를 친다.
원래 일기의 결말을 떠올려 본다.
그리곤, 오늘의 결말에 더 마음이 가는 걸 느낀다.
나에게 있어서 휴가는 이제는 권리가 되었다. 이젠 ‘휴가 사유’를 적는 칸조차 사라졌다. 단지 상사에게 나의 일정을 공유하고, 결재서류를 올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연차란 여전히 ‘허락’과 ‘양해’가 필요한 일탈처럼 느껴졌다. 같은 직장인이지만, 여전히 다른 노동의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타인의 일터를 보며, 현재의 나를 돌아봤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아주 낯선 세계를 만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