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브루탈리스트를 보고.

by 길고영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의 하나, 노출 콘크리트로 건물을 날것 그대로 표현한 것.

2차 세계대전 후 복구의 시기. 가상의 유대인 건축가의 삶을 따라간 영화 부르탈리스트를 보았다.


작품을 통해 내 모습이 반추되지 않아 두 편의 해석 영상을 보았다. 첫 번째 해석에서는 건축 예술로써 영화해석을. 두 번째 해석에서는 건축가의 영화해석을 접했다.


첫 번째 해석에서는 예술은 구현할 수 있는 자와 구현할 수 없는 자로 나누며. 구현할 수 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추앙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짓밟는 것이라 했다.


두 번째 해석에서는 영화에서 다룬 당시의 건축과 건축가로서 받은 영화의 느낌을 설명했다.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의 밀당. 마치 사귀는 듯한 초반의 느낌.

그의 느낌만으로 글을 채우지 않고자 해석영상을 멈췄다. 다만 한 가지, 그의 말에 건축이란 예술의 고독이 느껴졌다.


건축이란 예술은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이니 다른 예술로 가본다.
점 하나 찍힌 작품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현대미술. 그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을 접한 적이 있다. 점하나 찍힌 작품. 점이 훌륭해서 미술이 된 것이 아니고. 그 점을 통해서 감상자가 자기 심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점 하나 찍힌 작품이 훌륭하다고.


영화 한 편으로 심연으로 들어간다. 다시 주말부부가 되었던 나. 다시 주말부부가 되며, 상사와의 만취 술자리. 금방 흥미를 잃었던 헬스장. 온 시간을 가져간 재봉틀 시간을 채웠다. 심연에서 만들기에 맺힌 미련을 찾았다.


너무도 따뜻한 설날의 연휴 마지막날. 재봉틀과 같은 선상에서 고민한 가죽공예를 여러 선택지와 함께 손에 올린다.
몇 년 만에 재봉틀을 만지면, 소품 짓기에서 의상 짓기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글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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