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고양이 모자와의 조우 덕분에,
평범했던 주말이 특별해진 어제의 이야기다.
이틀 내내 비가 내렸고, 밤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는 맑게 갠 하늘을 보며 외출을 결심했다.
집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건,
다름 아닌 밤새 울던 고양이 모자였다.
놀랍게도 두 고양이 모두,
온몸이 새까만 검은빛이었다.
내가 모습을 보이자 새끼고양이가
뒤로 물러나며 무서워하길래 자리를 비켜줬다.
내가 멀어지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자는 세상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갔다.
새끼 고양이의 위풍당당한 엉덩이 놀림을
눈에 담고 돌아서는 길,
손에 DSLR이 없다는 사실이 괜스레 아쉬웠다.
일상의 메모를 담기엔 훌륭했던 핸드폰 카메라는,
오늘만큼은 고양이 관찰자의 역할을 하기엔 조금 벅찼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자 고양이 모자가
여전히 집 주변을 맴돌며 장난을 치고 있는다.
나도 내친김에 작년부터 집에 고이 모셔둔 고양이 캔을 꺼내든다.
습식 사료를 반찬 뚜껑에 전부 쏟아붓고,
집 담벼락 모퉁이에 둔다.
머지않아 고양이 모자가 와서 코를 박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는 듯하더니,
새끼고양이가 어미 얼굴에 발을 올리고
본인만 먹겠다는 표시를 한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이다가도,
어미가 조용히 물러나는 모습에
더 줄 것이 없는 내 형편이,
어미의 조용한 양보 앞에서 괜히 쪼그라든다.
모자의 귀여운 다툼이 있는 주위로 목덜미 이곳저곳에 이빨자국으로
지난 생을 증명한 수컷 성묘가 살금살금 어미 고양이 뒤로 다가온다.
나도 새끼 고양이를 놀라게 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와 속도로,
수컷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이네 수컷 고양이가
제 차례를 기다리듯 조심히 앉아 기다린다.
이내 곧 다른 고양이가 내 뒤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다가온다.
나는 방금 그랬듯이 새로 등장한 고양이 앞으로 한 발짝 내딛는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하다.
새로운 고양이는 모자 고양이와 같은 흑백묘인 데다,
새끼 고양이와 똑같은 노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졸지에 새끼 고양이 밥 사수대에서 고양이 무리 훼방꾼이 되었다.
내가 내 위치를 깨닫고 자리를 비켜주자
새로운 고양이는 모자에게 다가가 편안한 듯 몸 단장을 한다.
그 모습을 끝으로 나도 자리를 피했다.
집에서 일과를 보내는데
성묘가 새끼 고양이 목소리를 흉내 낸 듯한
울음소리가 애타게 들린다.
창밖을 빼꼼히 내다보니,
새끼고양이를 뒤에 내버려 둔 채
어미 고양이가 한 곳을 응시하고, 나아가며,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고양이가 안중에 없다는 듯
다른 집 모퉁이를 향해 애옹애옹 울며 애가 탄 듯 간다.
뒤에 남은 새끼 고양이는 어미가 사라지자 애옹애옹 운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나는 숨죽인 채 창밖만 바라봤다.
머지않아 어미가 돌아온다.
뒤이어 풀이 여기저기 붙어 엉망이 된
흑백의 새로운 고양이도 어슬렁거리며 돌아온다.
골목이라는 야생에서,
본능처럼 반복될 발정과 짝짓기.
그 안에서도 나는 정서로 엮인 고양이 가족을 만난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일지라도.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을 귀하게 여긴 내가 있었기에
그렇게 보였던 건 아닐까.
어제 만난 고양이와의 조우가 나에게 귀하였듯이,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 귀한 만남이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