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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그 순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by 길고영

이 질문은, 누군가 내 노래를 영상으로 남겨준 그날 밤부터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해외 콘서트장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청년들은 무대를 핸드폰으로 찍으며 6인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장년들은 두 눈으로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그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주말, 입사 이래 첫 워크숍이 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노래를 불렀다.

마치 몇 달 전 시작한 보컬 레슨이 오늘을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준비된 무대도, 마이크도 없는 자리였다.

가장 자신 있던 곡에서 삑사리를 연발했지만 이상하게 부끄럽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재미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공연장에 있는 가수처럼 내 이름을 외쳐주기도 했다.


너무 아쉬워서 한 곡을 더 불렀다.

간주가 흐르기 시작하고, 목을 풀어보려 애썼다.

펜션의 큰 방에서 유튜브 MR을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상황.

키 조절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욕심을 내어 원키로 도전했다.

첫곡과 달리 경청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매일 마주하는 동료들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하는 나’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는데,

그 순간이 영상으로 남겨졌다는 사실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삑사리도, 당황도, 웃음도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당사자인 나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노래였는데 말이다.


쑥스러움이 많은 나는 결혼식에서도 사진만 남겼을 뿐, 비디오는 찍지 않았다.

누군가의 기록 속에 남겨진 나를 보는 일이 낯설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기록’보다 ‘기억’에 더 익숙하다.

내 기억 속 결혼식은,

신부 대기실에 앉아서

멀리서 찾아와 준 나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버진로드를 걷던 순간이다.


그 순간의 감정은 나만의 속도로 남기고 싶은데,

영상은 그날을 가감 없이 보여줘 버린다.


쑥스러운 순간이 담긴 그 영상을 오늘 다운로드하긴 했다.

지금은 기억 속에서만 재생되고 있는 그 순간.

나는 그 영상을, 과연 언제쯤 용기 내어 재생할 수 있을까.


요즘 감성은 도무지 따라잡기 어렵다.

워크숍의 여운보다, ‘그 영상의 존재’가 더 오래 남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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