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시기와 방식을 생각해 보며, 사춘기와 성장에 대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한탄을 들어보면 이렇다.
"평생 자라지 않는 아기와 10년 이상 같이 보낼 자신이 있으신 분들만 반려동물을 입양하세요."
그 말을 듣고 문득 궁금했다.
‘평생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 사람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작년에는 ‘대학교, 나아가서는 회사에 전화하는 엄마’ 이야기가 퍼졌다.
지난주엔 뉴스 헤드라인이 이렇게 떴다.
[초등 의대 준비] 강남 3구 아이들, 우울증·불안장애 다른 지역의 5배
부모님이 손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본다.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그걸 보며 어깃장을 놓는다.
“엄마, 제일 안전한 집에서 부딪혀 봐야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툴 때도 뱃심으로 버틸 수 있어요.
너무 오냐 오냐만 하지 마요.”
부모는 한없이 엄하지만,
조부모는 한없이 인자하다.
그 차이에 질투가 인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심하게 사춘기를 겪었다.
그래서 사춘기를 순탄히 보낸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은 첫 직장에서,
혹은 서른 즈음, 마흔 즈음,
인생의 어느 큰 고비에서 사춘기를 맞닥뜨리는 것 같다.
나는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미리 겪었기에
지금은 그 시절의 뱃심으로 직장생활도 척척 해낸다.
내가 첫째였기 때문일까,
천방지축이어서였을까.
나는 불교학교, 피아노, 태권도… 다니지 않은 학원이 없었고,
1~2년간 사춘기를 제대로 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시절이 다행이다.
후회되는 선택과는 반대 방향의 삶.
탄탄대로만 걷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투영되는 요즘.
나는 여동생의 아들들이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도록
자주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