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는 건 나에겐 쥐약이다.
그래서 역사나, 공식을 외워야 하는 수학 과목을 늘 힘들어했다.
문학도 마찬가지였다.
복선을 알아차리고, ‘와, 이게 이렇게 연결되네!’ 하고 놀라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요즘은 유튜브 덕분에 놓친 장면들을 다시 볼 수 있고,
나도 감탄에 동참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
7월에 참석한 독서모임에서도 느꼈다.
나는 이야기의 큰 흐름만 좇으며
‘다음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에만 집중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초반의 장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그 의미를 이론과 연결 지어 이야기했다.
처음엔 나만 뒤처진 것 같았다.
그런데 감상문을 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꼭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쓰리 빌보드]를 보고는 ‘딕슨’이라는 경찰관의 성장에 마음이 갔다.
비록 모든 사건의 중심은 주인공이었지만,
내가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딕슨이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지지’라는 감정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감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감독이 말했듯, “영화는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학교 밖 울타리라는 말을 들었을 땐, 그저 ‘보호막’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울타리를 벗어났기에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답을 외우는 대신, 의미를 천천히 찾아가는 방식으로.
문학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처럼 날카롭게 복선을 짚어내진 못하지만,
대신 내 마음이 머무는 장면에 오래도록 애정을 쏟는다.
꼭 정답대로가 아니어도 괜찮다.
울타리 바깥에도, 감상의 길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