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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내가 깊이 빠진 건? [사랑이여 안녕]을 읽고

by 길고영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의 좋았던 점을 떠올리며 대학교 1학년 1학기 두 가지 동아리에 들어 활동했다. 두 동아리 모두 거리가 떨어진 캠퍼스에서 학교생활을 한 탓에 활동이 뜸해지다가 탈퇴의 수순을 밟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둘 다 글을 쓰는 동아리였다는 점이다. 한 개는 교지편집실, 나머지는 시 창작 동아리. 시창작 동아리는 친목이 목적이어서 무엇을 이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교자편집실에선 교지를 한 권 만들며 끝맺음을 한 추억이 있다.


이제 드디어 본론이다. 교지편집실을 하며 꼭 써보고 싶었던 글을 책에서 만났다. 역사란 큰 물결이 어떻게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는지 말이다. 고등학교 때 자연계인 까닭에 고1까지 밖에 역사를 배우지 않았다. 성실하지 않은 학생인 까닭인지, 교육과정 때문인지 현재에 다다르기까지의 굵직한 역사는 기억이 나지만, 개인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고, 궁금했다.


그래서 읽었다. [파친코]와 [밝은 밤]. 역사의 현장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들. 하지만 두 책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고, 궁금증을 풀어내주진 못했다.


그러다 [사랑이여 안녕]을 만났다. 익숙하지 않은 중국 근대화의 한복판, 그 소용돌이 속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설고도 생경했다. 나는 한 챕터씩 아껴가며 책장을 넘겼다.


중국의 전통 극인 경극에서 여자 주인공 역인 단을 연기하는 정접의. 남자 주인공 역인 생을 연기하는 단소루. 두 남자는 함께 중국 근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다. 부모에게 팔려 사합원에서 길러지고, 직업 배우로 성장하고, 사랑을 찾기도 상대에게 집착하기도. 재력가와 일본군에게 얽혀 인생이 저당 잡히는 삶. 천한 계급에서 국가 소속 배우로 월급을 받는 자리까지 올랐지만, 문화 대혁명 속 홍위병들의 조리돌림으로 인생을 다시 거부당한다. 그들의 긴 여정의 끝은, 신문 속 ‘홍콩의 중국 합병’ 기사 앞에서 거주지를 걱정하는 노인의 모습으로 닫힌다.


'수십 년 동안 혁명을 했는데도 우린 결국 원점에 와 있다.'

이 말이 너무도 눈에 밟힌다.

고대인의 기록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

이벽화 작가가 쓴 말의 의미와 고대인의 말의 의미는 같을까?


아껴 읽은 [사랑이여 안녕]에서 내가 깊이 빠진 건
생소한 중국 역사의 소용돌이였을까, 아니면 정접의와 단소루 두 사람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말이었을까. 끝내 정하지 못했다. 소루와 접의의 인생을 따라가며, 나 역시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한 개인이지만, 내 앞의 선택에 더 집중을 해본다.




부록: 챕터별 주요 장면 요약

[1장. 이별 연습] 소두자와 소석두는 여주인공 단과 남주인공 생으로 짝 지워졌다. 이때부터 그들은 눈이 함께 움직이며, 오직 상대방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연습했다.


[2장. 얼룩진 여백] "순간 불이 번쩍 하면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길고 긴 세월, 누구도 지금 서 있는 이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선언처럼 사진은 아이들의 얼굴을 사각의 틀 속에 고정시켜 놓았다."그들의 유년기가 끝났다.


[3장. 떠오르는 두 별] 직업배우로 정식으로 계약한다. 이젠 소석두 대신 단소루란 예명을. 소두자 대신 정접의란 예명으로 불린다.


[4장. 화장을 할 때와 지울 때] 소루와의 무대에서의 부부였던 적을 238번째 새던 접의. 소루를 위해 반평생 모은 돈과 예쁜 신까지 화만루에 남겨두고 소루를 향하는 창녀 국선.


[5장. 흔들리는 나날들] 소루는 도박에, 접의는 아편에 빠진다. 일본의 중국 침략이 더 가속화된다. 소루를 일본 처형장에서 구한 접의. 소루는 일본에 굽힌 접의에게 침을 뱉는다.


[6장. 소용돌이 속에서] 관사부의 시대는 저물고, 사합원도 막을 내린다. 일본군이 8년 만에 물러나지만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틈바구니에 갇힌다.


[7장. 사면초가] 1949년 중앙인민공화국이 출범한다. 소루와 접의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곧 문화 대혁명이 일어난다. 소루 "오늘의 비판 대상"으로 지목된다.


[8장. 불타고 남은 자리] 전진신호는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다. 10대의 홍위병에게 단소루가 무너진다. 소루, 접의, 국선, 소사는 심판대에 올라 서로를 삿대질한다. 그리고 모두들 각자의 길을 걷는다.


[9장. 외로이 뜬 배] 소루 노동형에 처해져 살아가는데만 집중항다. 홍위병의 권력도 땅에 떨어진다. 모택동과 그의 세력도 무너진다. 1976년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어 보이는 홍콩의 꼬마 소반자와 고통의 역사를 산 중국인민을 비교하며 침울해한다.


[10장. 최후의 '패왕 별희'] 소루 경극 지도위원이 된 접의와 만난다. 접의의 늙음과 손가락이 하나 더 없어진 것을 본다. 그리고 대화한다.

"우리는 늘 가질 수 없는 것만 원한 것 같아."

"맞아. 어떤 때는 너무 원해서 욕심에 눈이 멀기도 했지."

"그렇기는 해. 얻을 수 없는 것은 모두 좋은 것처럼 생각되거든. 사람이란 참 간사한 거야"

'수십 년 동안 혁명을 했는데도 우린 결국 원점에 와 있다'

접의와 소루는 모든 무대 장치가 철거된 무대에 올라 마지막 극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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