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의 랜선 집들이. 그는 벽에 걸린 액자 앞에서 발이 멈췄다. 그곳을 보며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담긴 장소”라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라니... 자소서를 쓸 때 말고는 떠올린 적이 없는 단어였다.
엄마가 준 선물은 결혼 전까지의 사진이 붙은 찍찍이 앨범이다. 내가 자라온 시간들이 거기에 있다.
아빠의 선물은 생활기록부와 개근상, 이름 모를 상장들이 꽂힌 파일철. 거기엔 나의 학창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사진 동아리에 몰두했다. 흑백 필름철과 사진철, 졸업 때 받은 롤링페이퍼가 남았다. 사진동아리임에도 매년 갔던 지리산 종주는 사진뿐 아니라, 지금도 내 마음이 기억한다.
대학 시절에는 실험 노트 여섯 권이 쌓였다. 수업 외에도 실험 방법을 차곡차곡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아마 그 덕분에 지금까지 직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혼에서는 웨딩 촬영도, 비디오도 남기지 않았다. 본식 스냅사진만 남겼다. 사진 속의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와 달랐다. 찍는 이의 시선과 선택이 만든 기록이 사실과 어긋날 수 있다는 걸. 사진 동아리 시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 그리고 곧 결혼. 굵직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졌지만, 그 기억들은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첫 직장에서의 고단함, 혼인신고서를 내기까지의 요절복통한 에피소드.
그 무렵부터였을까.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대학 시절 선배의 ‘매일 적는 지출 기록’이나 직장 선배의 ‘잠들기 전 일기’를 부러워하던 나는, 결혼과 직장생활에 매몰된 채 업무 일지만 써왔다. 작년까지는 그게 나의 전부였다.
이제라도, 오늘을 일기로, 어제를 감상문과 독후감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랜선 집들이가 던진 질문은, 내가 잊고 있던 기록과 기억을 다시 건져 올리는 두레박이 되었다.
성장 사진에서 실험 노트, 그리고 다시 쓰기 시작한 일기까지. 묘비명에 어떤 사건들을 새길지, 나는 오늘 저울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