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타인의 삶]을 보고
예전에 봤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영화. 다만 그때 무언가 기분이 좋았다는 느낌만 남아 있던 영화. [타인의 삶]을 다시 봤다.
한국의 중앙정보부와 비슷한 동독 비밀경찰에서 도청을 담당하는 주인공, 비즐러 대위의 이야기다. 그의 삶을 뒤흔드는 선택과 용기를 그린다. 영화가 끝나고 삭제 장면에 대한 감독의 해설을 보았다. 이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바탕에 둔 극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알았다. 그리고 문득, 이게 독일판 [바스티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봤을 땐 줄거리도, 실화 여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영화를 ‘시간을 보내는 용도’로만 봤는지도 모른다.
[바스티즈]는 2차 대전 당시 민주 진영이 끝내 해내지 못한 일, 히틀러를 처단하는 결말을 소망으로 그린 영화다.
[타인의 삶]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동독의 억압 속에서 변화를 선택한 한 사람의 과정을 소망으로 그린 영화다.
영화 속 동독은 곪아가는 사회다. 국가의 끝없는 속박 속에서 자살률이 세계 최고일 것이 뻔하지만, 보도 통제로 그 수치는 발표되지 않는다. 비즐러 대위는 장관의(햄프) 명령에 따라 작가 드라이만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드라이만의 연인이 장관과의 관계에 휘말리는 걸 보고 드라이만에게 알려 시련을 준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연인 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다. 이후 드라이만의 ‘불온한 움직임’을 포착하지만,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는다. 폭로 글이 서방 언론에 실리고, 그 화살이 드라이만에게 향한다. 하지만 비즐러의 본인의 장밋빛 미래를 버리고, 신념을 향하는 선택 덕분에 드라이만은 배후로 밝혀지지 않는다. 그 대가는 좌천이었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속 한나 슈미츠가 생계를 위해 유대인 수용소 간수가 되었던 것처럼, 당시 사람들의 선택은 대개 도덕보다 생존이 우선이었다. 그런 시대를 생각하면, [타인의 삶]의 결말은 독일인들이 바라는 희망이자, 실제로는 극히 드물 것이라고 학자들은 해석했다.
하지만 영화감독은, 그리고 관객은, 사실 여부보다 그 ‘바람’을 주고받는다. 그게 바로 예술의 힘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타인의 삶]은 내 마음을 울리진 않았다. 대신, 영화를 둘러싼 맥락을 정리하게 했다.
문서로 남은 역사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 역시 누군가에겐 중요한 역사라는 것을.
삭제된 장면
비즐러가 집에 매춘부를 들이는 장면
영화 스틸컷
영화 초반/중반/결말에서 비즐러의 신념 변화
감독의 시선
장관(햄프) 자녀의 현 위치와 그것에 대한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