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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각로 강성길 Oct 19. 2016

지금도 유효한 15년 전 노후준비

이질적인 3가지 노후 일거리


정년퇴직하면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TV 시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가진 게 시간밖에 없어서일까? 

방송 탄생 초기에는 사생아처럼 여겨졌던 종편 방송이 이제는 나의 주  채널로 든든하게 자리 잡았다.  

내가 자주 누르는 전문 채널은 자연다큐, 여행, 바둑, 골프, 뉴스 순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지만 생활 영어도 보곤 한다. 

혹시 미래에 혼자 배낭여행이라도 가게 될 경우, 비록 현실성이 희박하지만 꿈에 대한 예의 차원으로 인내를 

가지고 보고 있다. 

체격도 성깔도 비슷한 형제 같은 지상파 방송 위주에서 남대문 도떼기시장 같은 종편 방송으로 

암이 전이되듯이 자연스럽게 관심이 전이되었다. 


오늘은 채널 번호(89:바둑 전문 방송)를 누르지 않고, 화살표를 이용하여 좋아하는 채널로 이동하던 중 

`할 말은 하고 살자`는 대담프로가 채널 이동을 멈추게 한다. 

노후 문제 중 50대 취업에 대한 전문가 대담 프로였다. 

정년퇴직 전 직장이 국민의 노후를 준비하는 공단이기에 노후의 `노`자 소리만 들어도 똥인지 된장인지 

내용을 훤이 알 수 있는 주제였다. 

50대 재취업으로 비교적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객관적으로 풀어가고 있었다. 

이 방송을 보는 도중 문뜩,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홍천 내면에서 만났던 촌노가 생각난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과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2001~2년도쯤 된다. 

노후 준비 차원으로 거의 3년 동안 시골 땅을 보러 다녔다. 

사람 손이 많이 간 유원지나 유사한 분위기의 산사 등 국내 여행에 고루한 감정이 드는 시기였고 한편으로는 

당시 사십 대 중반으로 직장생활이 권태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색다른 여행을 갈망하는 때였다. 

두 가지 고민의 해결책으로 선택한 것이 강원도를 중심으로 홍천 양양 등지에 시골 땅을 보러 다니는 

것이었다. 


한 번은, 지역이 넓고 천이 많다는 홍천군에 소재한 산촌 땅을 보러 갔다. 

전날 미리 약속한 장소와 시간에 도착하기 충분하게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에 살았기에 비교적 용이하게 서울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날 날씨는 `매우 맑음`이었다. 

강원도 홍천 가는 길은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려있지만 당시만에도 양평을 거쳐 홍천군 내면까지 

국도 따라가려면 족히 5시간은 걸렸다.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갖는 커피 한잔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한 감상에 빠지는 것은 아마도 과거의 추억으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대산 두로봉이 발원지인 내린천과 자운리 무명산이 발원지인 자운천이 만나는 두물머리 격인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옛날로 치면 주막 같은 산촌 매점에서 칠십 정도 나이가 드신 촌노를 만났다. 

부동산 매물이었지만 물건은 부동산 사이트에 올리고 땅 소재 이장이나 말발 깨나 있는 마을 사람이 중개사 

역할을 하였다. 

그분 이야기로는 이곳 내면도 목이 좋은 곳 즉 내린천, 자운천에 `접한 땅`은 대부분 서울 부자가 10년 전에 

미리 선점했고 지금은 조금 떨어진 당시 용어로 `인접한 땅`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돌아본 여러 군데 중 마음에 드는 땅은 없었다. 


한 시간 정도 땅 보러 돌아다닌 게 결국은 내린천 주변을 여행한 모양이 되었다. 

광원리 주변에는 풍광으로 유명한 살둔계곡과 칡소폭포가 있다. 

촌노와 함께 돌아다닌 광원리 주변도 또 다른 살둔계곡과 칡소폭포였다. 

내린천 곳곳이 푸른 물이 모여 사는 소(沼) 요, 맑은 물이 흐르는 천(川)이었다. 

주변에 푸른 소나무가 홍살문 되어 내린천과 자운천을 포근히 감싸는 형국이 있었다. 

단지 이런 곳을 조금 벗어났다는 이유로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땅에 대하여 얼마나 오만불손한`식견이었는지 알 수 있다. 


촌노와 헤어지기 전에 광원리 자운교 옆에 있는 지방도로 옆 매점에 들렸다. 

매점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할 정도로 담배 몇 보루와 음료수 두어 박스 그리고 과자 서너 가지 등이 전부였다. 

시골 땅 구매자에서 여행객으로 돌아가 이런저런 대화도 하고, 음료수도 함께 마시면서 광원리 주민이 

되어갔다.  

촌노는 다음과 같이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광원리에서 태어나서 이웃 마을 색시와 중매결혼하여 70 평생 이곳에서 살아왔단다. 

아들 2, 딸 3, 자녀는 모두 서울, 춘천, 원주 등지로 시집 장가보내고, 아들딸 낳고 무탈하게 산다고 한다. 

이곳 고향에는 노부부만 살고 있었다. 

이렇게 광원리 주변 땅을 소개하여 생기는 중개료 명목으로 1년에 100만 원 정도 수입이 된다고 한다. 

이곳은 산이 높아 논은 거의 없고 조금 있는 비탈진 밭에 서리태(콩)를 심어 얻는 소득이 년 200만 원가량이고, 홍천군 내면의 특산물인 산산과 장뇌삼을 중개 또는 판매하여 250만 원 정도 소득이 된단다. 

이렇게 3가지 이질적인 일거리를 중심으로 `노부부가 살아간다`며 무용담 삼아 들려주었다. 

당시 맞벌이하는 나는 `일 년 총수입 550만 원으로 노후 생활을 한다`는 데 대하여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바로 흘려버렸다. 


15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완벽한  현지 활용 노후준비였다. 

적당한 노후소득에 놀랐고 건강한 사회 활동이 수반되는 이질적인 일거리에 감동할 따름이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안정적인 소득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촌노의 노후준비 케이스는 앞으로 연구하고 다듬어서 활용가치를 높여야 한다. 

개개의 일거리에서 나오는 소득은 적지만 2개 이상 일거리를 가짐으로써 필요한 소득을 창출하는 새로운 

노후 준비 `패러다임 내지는 샘플`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나이에 대한 입장 이해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나이 드신 분이 툭하면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 나이 되어봐`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 나이에 도달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씀을 하시는 노인분도 그 나이가 되기 전에 귀가 따갑도록 그 말을 들어왔을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동서를 막론하고 인종에 구분 없이 통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 개개인이 미래를 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아니 더 단호하게 말하자면 `불가능하다`에 귀착된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는 것이 사회제도인 국민연금인데 

이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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