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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각로 강성길 Nov 15. 2017

무작위 추첨제 민주주의

성북구 주민 참여단

성북구 주민참여단     


바둑을 둘 줄도 알고, 바둑 심판 활동도 하지만 왠지 가끔 찾아오는 찌뿌둥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가슴에 실금이라도  갔는지 모르지만 우울증과 유사하여 삶의 가치가 한없이 추락하는 그런 날이 있다. 이런 날에는 평소 나와 어울리지 않은 ‘봉사’가 크게 다가온다. 인생의 질을 비옥하게는 못 할망정 더 이상 척박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것 같다. 바둑 지도에 대한 봉사 기관을 찾아 등록하는 과정에서 잘못 들어간 성북구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에는 주민참여단 안내 사항도 있었다. 봉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냥 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성북구청 홈페이지를 닫는 순간, 동시에 신청 사실도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다시 한가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달쯤 지난 어느 날 성북구청 마을 민주주의 과에서 문자가 날라 왔다. 성북구 주민참여단 발대식 행사가 있으니 참석여부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발을 들여놓는 것이 어렵지 일단 발 끝만 닿아도 뉴턴의 관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려 하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는 원리와 같이 나도 모르게 ‘신청’이란 움직임을 시작으로 계속 참여 진행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발대식에 참석하여 주민참여단 위촉장을 받으면서 특강도 들었다.      


추첨제 민주주의 관련 특강은 이러했다. 고대 민주주의 시작이 마을 주민 가운데 무작위(random)로 추첨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자 부와 권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이 추첨에 당첨되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운 구조였다. 주민 대부분 평민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학문과 권력, 경제력을 가진 소수의 귀족이 투표를 통한 민주주의를 제안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특강 내용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돈 없이 한량 같은 정치인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냐는 뜻이다. 투표에 의한 간접 민주주의는 돈과 정당의 추천에 의하여 주민의 대표로 결정되고 그들만의 리그 정도는 고대나 현재나 주민은 다 알고 있다. 좋은 말로 정당 추천이지 추천 속에는 매점매석과 유사한 더러운 악취가 풍기거나 아니면 보이지 않는 끈에 목줄 찬 도그 같은 인간이 주민 대표라고 어깨에 힘주는 세상 아니던가. 


30분에 걸쳐 진행된 추천제 민주주의 요점은 별거 없다. 모든 성북구민은 구청장 내지 구의원 정도의 ‘상식과 능력이 있다’라고 전제하고 무작위(random) 추첨으로 위촉받은 구민이 구정에 참여하여 선진 성북을 만들자라는 그런 요지이다. 공개모집 375명, 무작위 추출 125명으로 구성된 성북 주민참여단은 임기가 1년이다. 앞으로 구청의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주민 참여단 500명 가운데 필요한 인원(예 100명)을 무작위로 추첨하여 추첨된 참여자에게  현안 자료를 제공하고, 관련 교육을 한 다음 토론을 거쳐 투표한 결과를 구정에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빠져들기 시작하여 2017.10.25.  그것도 저녁 7시에, 집에서 가려면 버스도 갈아타야 하는 협치 조례 제정 공청회에 또 참석하게 되었다. 수백만 원 강사료를 주고 초빙하는 명강사의 강의에도 거침없이 고개 숙여 기도하는 그동안의 내가, 가족이 모이는 저녁에 차비도 내가 내고, 더군다나 두 눈도 초롱초롱 유지한 채로 협치 조례 제정의 내용을 열심히 듣고 살펴보는 나를 돌아보고 흠짓 내가 맞나 의심이 갈 정도였다. 예정 마감 시간을 30분  넘겨도 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든 공청회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미 짜인 각본대로 이끌려는 주체 측과 변화를 추구하는 주체 측 이외 주민의 알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질문자를 사회자가 선정하는 데 공청회 참여 주민 대다수가 주민 참여단이다 보니 누구를 지정한다 해도 주체 측에 우호적인 질문자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였다. 3명의 질문자 가운데 나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민관 협치 활성화를 위한 기본 조례(안) 중 제1조(목적) 이 조례는 민관협치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구민과 지역사회 내 다양한 주체들의 구정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가치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에서 다양한 주체의 의미와 대상이 무엇이며, 다양한 주체만이 '민(民)'인지 여부,


 제9조(협치 성북 회의 구성) 당연직과 위촉 직에 대한 규정 1. 시민단체 또는 직능단체의 추천을 받은 사람 2. 구의회에서 추천한 구의원 3. 그 밖에 민관협치 활성화를 위하여 구청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 4. 위촉직 위원은 특정 성별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고 청년· 장애인· 다문화가족 등이 참여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에서 협치 성북 회의 위원 25명 가운데 '민(民)'에 해당하는  주민 참여단이 왜 1명도 없느냐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공청회 중 가장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심지어 사회자도 잠시 사회를 멈추고 박수를 치고 그에 대한 답변자를 지정하였다. 옆에 계시던 분이 아주 잘 했다며 칭찬과 격려까지 하는 바람에 조금은 으슥해지는 기분까지도 들었다.     


공청회 다음다음 날(10.27) ‘우리 마을 살림살이 우리의 손으로’라는 제목 아래 타운 홀 미팅이 진행되었다. 참석자는 주민참여단, 주민참여예산위원, 동 마을 심사단 등 성북구 주민 100명이다. 주민참여 예산사업 27개 중 7개 사업이 투표에 의하여 탈락이 결정된다. 27개 사업 주민 제안자들이 나와 꼭 구민에게 필요한 사업이라며 열심히 참석자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사업 제안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사업에는 이틀 전 질문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 한터라 뉴턴의 관성의 법칙에 따라 나의 생각을 질문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과연 주민 참여단 생각과 내가 우려했던 생각이 어떠한 모습의 결과가 나올까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싶었다.      


탈락 사업 목록 중 하나 '빈 교실을 활용한 플레이 랩' 조성, 예산이 7천만 원을 들여 소수 아이들을 위하고 또한 놀이 촉진자(놀이 큐레이터)를 위한 사업 같아 질문을 무지무지 하고 싶었으나 참고, 참으며 결과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무리 설명을 잘 하고 준비를 잘 했지만 결과는 이해관계가 없는 주민 참여단의 상식선을 넘지는 못했다.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와 비슷한 유형으로 이주외국인의 자립 및 직업 능력 향상을 위한 바리스타 자격증 교실, 예산 1천3백만 원, 자격증만 취득하면 취업이 되는 것처럼 설명하지만 - -. 현실은 그렇지 않고, 무료로 가르쳐준다고 하지만 제반 경비를 예산으로 메꾸는 사업이었다. 질문하고픈 마음이 목구멍까지 왔으나 참았다. 주민 참여단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산이 주민을 위한 사업이라고 외치고 외쳐도 이해관계가 없는 참여단 눈높이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역시 내가 바라보는 것과 일치했다.    


이밖에 탈락 사업이 성북천 분수대 광장 주변에서도 힐링 음악방송을 듣고 싶어요, 외국인 및 이주자를 대상으로 한 성북구 문화탐방 교실, 주민 휴게 공간 및 어린이 놀이터 조성, 청소년 문화공유센터 시설물 리모델링이 사업 선정에서 탈락하고 그 밖에 20개 사업이 선정되었다. 이번 성북구 주민 참여단의 일원으로 일련의 추첨식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작위 추첨(random)된 참여자의 능력이 명성 있는 전문 위원보다도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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