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기차여행
지루한 이야기
기차역에 비가 내린다. 철길에도, 터널과 신록을 품은 산에도 소낙비가 차지했다. 철길 자갈은 마치 마을 느티나무처럼 모든 빗줄기를 받아들인다. 철길의 신호등은 언제나 빨강 신호등이다.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부끄러워서일까? 사람이 기차에 오른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또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외로운 신호등도 빗속에 마을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다. 늘 마주 보고 달리는 철길은 터널로 사라진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 터널 입구에도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의 낯익은 풍경들이다.
소낙비는 물안개가 되어 우산 속 얼굴로 들어온다. 따뜻한 바람도 같이 들어온다. 역 안내 방송은 ‘익산행’ 기차가 들어온다고 알 듯 모를 듯 알려주고 이내 영어로 속삭인다. 처음에는 영어인 줄도 몰랐다. 20년간 공부한 영어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마도 비 오는 날 떠났을 영어는 충청도 어디에 살고 있지 않을까 추측하지만 내 생각일 뿐이다. 소낙비 오는 날, 물안개와 함께 내게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람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역전 사거리 건너 순댓국집에서 뜨듯한 국밥을 먹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지루하지 않은 느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농촌 소도시에 무슨 여인숙 여관이 그리 많은지 놀라웠다. 길을 잘못 들었거니 하고 돌아 나오다 보니 사거리 모퉁이에 농협이 있었다. 요즘은 속된 말로 심심하면 소변이 마렵다. 더욱 이상한 것은 어찌 된 일인지 감을 느끼자마자 상황이 항상 다급하게 전개된다는 것이 특이하다. 나이가 주는 반갑지 않은 선물 이리라. 농협에서 개운한 행복감을 맛보는 사이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버스 간이 정류장에 비를 피하고 물끄러미 빗줄기를 바라본다. 주변이 소낙비로 채워지면 하늘에는 천둥소리와 번개 빛이 요동친다. 유리로 가려진 간이 버스 정류장 안에서 이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핸드폰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물을 쏟아버리는 소낙비였다. 가벼운 두려움마저 들었다. 간이 정류장 유리벽에 부딪히는 ‘씨륵룩’ ‘따따쇄솨’ ‘후다다닥 우르르 꽝꽝’ 이런 소리들은 설사 무슨 일이 지금 일어난다 해도 당연한 듯 보였다. 주변이 금방 물 천지로 바뀌었다.
잠시 소낙비가 자자 드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억수 비가 세상을 삼키고 있었다. ‘우르르 꽝꽝’ 정신없는 와중에도 ‘철판볶음’ 네온사인의 평화로운 글자는 순서에 입각하여 더도 덜도 없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미용실 네온도 동요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젠 정류장엔 할머니, 아주머니, 학생 그리고 나 4명이나 되었다. 할머니 혼자 중얼거리신다. ‘그렇게 비가 안 오더니 쯧쯧 - - ’ 하시는 소리에 아주머니 또한 혼잣말로 ‘웬일 이어?’ 하신다. 오늘 예산 여행은 억수 비속에 간이 정류장에서 보내고 있었다. 싫지는 안 했다. 거센 소낙비 속에 작은 유리 공간에서 맞이한 묘한 낯섦이 주는 행복이었다. 학생은 나와 같이 핸드폰을 연실 더듬고 있었다. 하늘을 보았다. 단정하고 점잔은 회색이었다. 하늘이 아니었다. 오래된 시멘트 벽의 연장이었다.
그치지 않는 소낙비가 있을까? 간이 정류장에는 없었다. 아주머니 구시렁 소리에 슬그머니 비가 조용해졌다. 농촌 소도시 여행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