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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초적 Oct 25. 2023

조용한 사람들

침묵이 편한 사람


저 이 느낌을 좋게 기억하고 있어요.

조금은 침침한 거실의 조명 그 한구석 소파에 앉아

따뜻한 차 한잔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귀 기울이며 홀짝거리는 이 시간을요.


서늘한 기운이 맴도는 이 시기

환기하려 열어놓은 창문틈으로는

차분히 가라앉은 흙냄새 섞인 이 밤공기 냄새

그리고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

지나가는 퇴근길의 자동차 소리


이 느낌을 평화롭고 좋다고 생각해요.

어딘가 조금은 적적해도

지나간 것들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그때의 그 시간과 함께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조용한 사람들.


겨울의 끝자락 봄 초입의 시기 차가웠던 모든 것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흘러 들어오는 생기로

움츠려 들었던 것들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변모한다.


나를 형용해 주는 어떠한 것들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 같은 애태로운 생각들이 삶을 지겹게 하는 요즘. 아직 새로운 만남까지는 생기가 다다르지 않았는지 나에게는 어떠한 기대조차도 주지 않았다.


효창공원역 근처의 카페에서 토요일 저녁 정각에 만나기로 약속한 당일이다. 딱 정각에 맞춰가야겠다 생각했지만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먼저 도착했다는 그녀의 메시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기대는 없었지만 누구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프로필 사진을 궁금해하지 않는가.


적당히 들려오는 인디 음악소리. 맛이 생각보다 쓰던 커피. 언제나 그렇듯 첫 만남의 필수 코스처럼 피로가 동반하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보편적이지만 사적인 질문. 적극적이나 적극적이지 않은 대화들이 오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는 피로 섞인 질문을 하다

지친탓인지 순간의 침묵이 흘렀다.


"저는 조용한 것을 좋아해요." 마주하던 낯선 이 가 말했다.


"조용한 것이요?" 나는 먼저 말문을 트여준 것에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내가 너무 떠들었을까라는 순간의 당황함에 조금은 과도한 리액션처럼 질문이 튀어나왔다.


낯선 이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듯 소탈하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네 저는 침묵이 편한 사람을 좋아해요. 음.. 침묵도 침묵으로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땐 아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같이 있을 때 같은 곳을 바라보며 분위기로 대화를 하거든요. 일종의 마음의 대화랄까?" 그녀는 조금은 부끄럽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말했다.


"네 저도 뭔지 알 것 같아요. 그 말들 전적으로 동의해요."

나도 모르게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저도 조용한 것을 지향합니다. 마음으로 하는 대화.

뭔지 알아요. 하지만 요새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을 해야 알 수 있다고만 다그쳐요. 저는 마음으로 아껴두었다. 꺼내 보이는 말들이 때때로는 진흙 속 진주처럼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련하고 바보 같은 침묵도 있겠지만요." 그녀의 말속에서 내 생각이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은 탓인지 나의 생각이 생각보다 말로 명확하게 나왔다.


"좋은데요- 정말 오래간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우리 서로 부담은 조금 내려놓고. 저녁 간단히 먹고 요 앞 경의선숲길가서 산책하고 들어가요" 그녀는 아까보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내 느낌이 맞다면 나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 같다.


"네 우리 그렇다고 의무적으로 침묵만 지키진 말아요. 묵언수행이 될 수도 있어요." 나는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그리고 카페를 나서고 가벼운 저녁 그리고 산책을 나누고 헤어졌다.

적당한 대화. 아니 미련하지 않은 침묵을 잘 지키며, 오히려 정말 편한 분위기의 대화를 아주 오랜만에 한 것 같다.

아마도 그 사람 조용하지만, 단단한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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