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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초적 Oct 21. 2023

화창한 날의 역설

가장 화창한 날 가장 슬펐던 날

요새는 그렇게 잠이 잘 온다. 밤 열한 시가 넘으면 눈이 감겨온다.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깨어 있으려 발악하듯 핸드폰을 부여잡고 새벽까지 깨어 있으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잠이 달아날까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내 육체가 피곤한 건지 내 정신이 감정소모를 쉬라고 강제버튼을 누르는 건지 헷갈리는 요즘. 그래도 숙면을 하고 오래 자는 게 만사 편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느지막이 일어나 휴무를 보내려 밖으로 나섰다. 가을인데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 마치 꼭 봄처럼 느껴지는 풍요롭고 산뜻한 내음이 가득하다. 근데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슬픔이 가슴 한켠을 타고 올라온다. 이렇게 풍요로운 날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날의 기억 스멀스멀 떠오른다.


봄날이었다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형이 죽었고, 그다음 해 봄에 아버지가 죽었고 이 모든 일을 몹시 화창했던 날, 평화롭던 일상 속에서 연락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형이 사경을 헤매며 병실에 있었던 날에는 아카시아 꽃이 만개하여 모든 것이 소생하는 계절이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도 따뜻함이 차오르는 봄의 끝자락이었다. 아주 화창하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가득한 날이었는데, 그래서 더 슬펐다. 나의 무의식 속에 그런 상처가 있나 보다. 이렇게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불편함과 슬픔이 차오른다. 나의 계절은 그렇게 느껴진다.


어른들은 그래서 창밖을 바라보며 계절에 빗대어 자신의 세상을 되돌아보곤 하나보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낙엽이 쌓이면 쌓이는 대로

어른들의 의연함이 조금은 이해가 되어가는 시절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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