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걸작"을 위한 Mind Set 3편
우리 인생에서 고통이란 무엇일까? 나는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잊을만하면 나타났다가, 또 어느 순간 사라지는 인생의 동행자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고통과는 완전히 떨어져서 살 수는 없다. 심지어 베스트셀러 작가, 정신과 의사 그리고 사상가로 유명한 스캇 펙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는 삶을 고통 그 자체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삶은 고해다.””삶은 문제의 연속이다”라고 언급했다.
"인생의 걸작"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고난, 고통은 피해 갈 수 없다. 이 또한 인생의 여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을 때 고난이 닥쳐오기도 하고, 전혀 예측 못한 상황들이 일어나서 우리를 패닉 상태에 빠져들게 하기도 한다.
내가 경험한 아니면 내가 지켜보게 되었던 고난 예시는 많다. 스타트업을 창업했는데 끝까지 함께 할 것 같았던 공동 창업자(주식과 함께 )가 뛰쳐나가는 사례를 보았다. 같이 창업했으니 꽤나 많은 지분을 갖고 나간 것이다. 믿었던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도 있다. 창업해서 투자받기로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는데 입금 하루 전날 없었던 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계약이 된 경우라 다른 투자사들 투자 제안을 다 거절했었는데 이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벌어졌다. 이러면 사업이 망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컴퓨터에 저장을 잘못해서 한 달간 작성한 글이 날아갈 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있는 회사에서 또라이 상사 때문에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직한 회사에서는 더 이상한 상사를 만났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또라이 상사를 피해 다니려고 계속해서 이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건 피하려야 피할 수 없다. 고통 고난이 딱 이렇다. 우리 삶에서 마주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이게 인생의 현실이다. 운이 좋다면 몇 번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났을 때 반응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진다.
1. 고통을 당한 피해자
2. 고통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자
예를 들어 위 글의 또라이 상사 케이스를 생각해보자.
1번은 내가 철저한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상황이다. 즉 상사는 가해자, 나는 피해자다. 그래서 상사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다 상사의 잘못이 크다. 설사 내가 이직을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또라이 였던게 모든 일의 절대적인 원인이다. 이직한 회사가 별로여도, 이게 다 상사 탓이다.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잘못은 상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상사가 나에게 연락해서 사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의 할 일이다.
상사 때문에 이직한 회사에서 성과도 별로 좋지 않았다. 순간순간 상사 생각이 떠오르고 분노의 감정이 생긴다. 자다가도 상사 생각에 화가 난다. 이러니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내 인생을 이 상사가 망쳤고, 내 인생의 열정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회사를 결국 그만두었는데, 이것도 상사의 잘못이다.
극단적일 수 있지만, 1번 피해자로서 상사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2번 반응은 1번과 차이가 있다. 물론 또라이 상사 때문에 내가 이직을 하기는 했지만, 엄연히 이직은 나의 선택이다. 이직 결과에 대해서 나에게 책임이 있다. 이직을 하든 아니면 그대로 다녀도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서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상황이 한결 더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인생에서 또라이 상사에게 겪었던 일들이 기억에 남겠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상사 때문에 내가 지금 일에 집중을 못해봤자 나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상담도 받고 하면서 점차 개선해 나 갈 것이다. 상사가 원망할 때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상사는 그저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1,2번의 차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1번은 내가 피해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가해자인 상사에게 있고, 상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고통들을 회피하려고 하는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고통의 책임이 나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니라, 전부 상사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을 겪으면 많이 힘들다. 잠도 잘 안 오고 분노에 가득 찬 나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지낼 것인가?이다. 이런 또라이 상사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길가에서 보면 반갑게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상사가 사과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정말 낮다.
반면 2번은 상사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내 인생의 고통에 대해서 직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고통을 받아서 괴로운 건 1번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겪은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이직을 하든 상담을 받든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가 책임지고 방법을 찾아가는 걸 선택했다.
물론 1. 고통을 당한 피해자 2. 고통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자이 두 가지 케이스는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다. 우리는 1번과 2번 사이에 애매한 상황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레에게 1,2번 사이에 더 가까운 쪽이 있다.
1번과 같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피해자로 계속 남아 있다면, 과연 우리가 인생의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피해자의 특징 중 하나는 나 자신만의 선택과 책임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인생의 모든 부정적인 일들에 대한 책임을 가해자로 넘기기 때문이다. 나만의 결과물을 만든다는 건 끊임없이 선택하고 책임지고, 다시 선택하고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1번과도 같은 피해자 관점으로는 이 고통의 과정에서 피하고 도망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믿을지 모른다. 이건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가해자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고난을 직시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갖은 자는 성장이라는 열매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성장이란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마치 인생의 고통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시키고 결국은 날카로운 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고통-성장 사이클을 겪으면서 점점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러다 보면 인생의 역작을 만나는 순간을 맞이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 역시 직면해야 한다. 고통 자체를 성장의 기회로 봐도 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 기반하여 극복해야 하는 요소로 이해해도 된다. 분명한 건 설사 고통의 원인이 내가 아니더라도 내 인생에서 벌어질 고통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결국 우리만의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다.
인생의 역작은 고통을 뚫고 이겨낸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