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존재
자연에서의 변화는 당연한 수순으로 읽혀진다. 자연물의 하나인 인간 역시 고정 불변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한편 이러한 변화에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곧 변화의 목적을 설정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는 곧 인간의 변화가 자기 완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구분짓게 하는 특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즉 인간은 “변화하는 자이며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자이다.”
향간에 자주 인용되는 사례로, “우리의 개별 세포 전체가 전부 교체되기 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는 썰렁한 농담이 있다. 여기서 ‘우리’ 혹은 ‘나’는 세포의 변화에도 동일성을 유지한다. 인간의 인격은 이러한 동일성에서 출발을 하여, 인간 주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형성한다.
이때 인간의 동일성은 사회적 관계에서의 인간 주체로써의 조건이 된다. 이는 인간이 곧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뜻한다. 계약 관계에서 발생되는 의무 이행은 한 개인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선택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법률적 차원에서만 소급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되는 원리이다.
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국가의 권력에 의해 이러한 책임을 일부 면제 받는 집단을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우선, 미성년자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성장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는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인정된다. 따라서 미성년자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한 인격체로서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행위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이에 대한 책임은 일부 본이 지게 되어 있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미성년자의 후견에게 지워진다. 또한 한때 금치산자 혹은 한정치산자로 불리었던, 성년피후견인 혹은 한정피후견인의 경우도, 위와 유사하다.
이는 인격적 미성숙의 관점보다는 심신상실(心神喪失)의 상태(常態)에 있는 인격체로서 대우를 받는다. 이처럼 인격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자유로운 행위 주체라 받아들여지며 도덕적, 법적 의무를 준수를 기대할 수 있간에 한해서 인정된다.
한편 인간의 이러한 의무의 이행은 단지 외부적 강제에 복종하는 방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자신만의 법칙을 상정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여타 짐승과 구분된다. 이러한 것을 흔히 양심이라고 부르는데, 양심은 자기 강제, 내적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인간의 자율이라하는 것은 동물처럼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외부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자율성이야말로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보는 근거가 된다. 흔히,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면서 천부인권을 이야기한다. 즉,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하늘이 부여한 의심할 수 없는 자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앞선 논의를 매우 일축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짦게나마, 인간의 전통적인 개념에 대해 이해를 도모해보았다. 우선 인간은 신성 혹은 자연에 의해 생명이 불어넣어진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체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이지점에서는 여타 짐승과 크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으나,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말할줄 알고 셈할줄 안다는 것이 인간이 세상 만물을 구분 짓고 대상화하며 이를 셈하는(이용하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인격은 이러한 자율 이성에 기초한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가 되어 준다.
이러한 휴먼에 대한 정의는 오늘날까지도 법과 제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인식의 최후의 보루로 자리매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러한 인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과연 이러한 변화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것일까? 이러한 포스트휴먼적, 혹은 휴먼을 벗어나려는 시도들이 사실 역사 이전부터 계속되던 인간의 근본성과도 연결이 있다. 미리 언지를 두자면 이는 비단 인간의 특성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이 원리를 따르는 것으로, 이는 예속으로부터의 벗어남, 즉, 자신을 한계, 규정 짓는 것에 대한 도전과 타파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