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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cud Aug 12. 2023

#008_'초'인간 서사 _ 포획된 젊음 _ 생산 신화

포획된 젊음 - 생산의 신화

포획된 젊음 - 생산의 신화


  젊음은 탄력적이다. 탄력은 외부로 부터 받은 힘을 튀기는 성질이다. 젊은 사람의 피부는 주름지지 않고 탄력이 있다. 계단을 오르는 젊은 사람의 허벅지는 탄력이 있다. 갓 만든 활은 탄력이 있다. 탄력은 중력을 거스리는 힘이다. 탄력은 예속을 거부하는 힘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은 언젠가 늙기 마련이다. 늙는 다는 것은 탄력을 생산해 낼 역량이 부족해짐을 의미한다. 이는 중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 됨을 말한다. 노화는 저항할 수 없는 예속이었다. 이것은 이전까지 자연의 섭리였다. 


  1961년,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인류는 처음으로 무중력의 우주를 경험했다.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구의 중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 불로초를 쥔 길가매쉬가 그랬을까? - 2003년,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다.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히던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졌다. 이들 연구가들은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은 인간다운 삶을 꿈꾼다고 말한다. 이들 중 일부는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노화가 없는, 즉 자연사하지 않는 인간 신체의 개조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이 이를 실현 시킬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이 말하는 노화의 극복, 생명 생명 주기에 대한 조작은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까?


  젊음의 탄력적인 힘은 중력을 거부한다. 젊음은 포텐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방향이 정해지지 않는 무질서한 흐름을 갖는다. 그렇기에 불안정하고 정제되어 있지 않다. 한편 이는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렇기에 언제나 누구에게나 탐나는 것이다.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살인은 젊음에 대한 도둑질이었다. 


  한편 이러한 생성의 에너지는 소비재를 위한 생산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태양열 전지판이 태양의 열에너지를 생산을 위한 에너지의 형태로 전환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에너지의 전환 과정에는 전환된 에너지를 활용하려는 이가 개입되어 있다. 즉 에너지의 전환은 그러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 의해 행해진다. 


  우리는 질병없는 영원한 젊음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왜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가 소멸 단계로 접어드는, 즉 노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의 상태를 충만한 상태, 즉 젊음의 상태로 유지시키려는 것일까? 우리의 에너지가 항상 충만한 상태여야하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가정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사회체는 젊음의 탄력을 포획해 동력을 만들어내라는 협박한다. - 어느 국가가, 어느 집단이 늙은이들만 가득한 세상을 원하겠는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돈을 두고 벌이는 폭주하는 기계들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미 동력이 상실된 늙은 보안관의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늙은 보안관의 절실함은 날뛰는 포획 장치에 일조한 지난날의 자신의 젊음에 대한 후회였을까? 한편, 오늘의 불로에 대한 연구는 정말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획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는 매트릭스에 공급될 신선한 생체 에너지처럼 젊음을 흡혈하기 위해 고안된 첨단의 장치이지는 않을까? 만약 길가매쉬가 불로초를 먹었더라면, 그의 백성들은 새로운 엔피두를 요청했을까? 영원히 늙지 않는 길가매쉬는 엔피두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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