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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엔 피카소가 살았고, 누군가에겐 여기가 루브르였다.

그대 고운 내 사랑

by 김바비

요즘 폭싹 속았수다에 푹 빠졌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대학을 와,

서울에서 취업한 금명이가 마치 나 같았다.

(심지어 금명이도 K-장녀에 남동생 있음)

나도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까.


어제(금요일)도

폭싹 속았수다 9~12화를 몰아보면서 엉엉 울었다.

슬프기도 하고 공감이 되기도 하고,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나 T인데;;)


드라마에서 박충섭(김선호)이 등장한다.

박충섭은 서울대 미대를 다니는데,

알바로 극장에서 영화 포스터를 그린다.

그는 자신만의 신념이 있어서,

극장 주인이 그리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포스터를 좀 자극적으로 그린다든지..

그래서 자꾸 한 소리 듣고, 박충섭도 고민한다.


그런데,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면서

박충섭이 그린 그림이 극장에 걸릴 때마다

그의 엄마가 극장 입구를 맴돌며,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이 그림 잘 그리지 않았냐"

"그림을 그린 사람이 서울대 출신이다"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라며

은근슬쩍 자랑을 한다.


자식이 그린 그림이 어떤 그림이든,

'자식'이 그렸다는 이유로

자랑스럽고 계속 보고 싶은 것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유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깐느극장 지하실엔 피카소가 살았고,

누군가에게 여기가 루브르였다"

*피카소= 박충섭, 누군가= 박충섭의 엄마


이때 우리 아빠가 생각이 났다.

나는 조회수를 뽑아야 하는 기사를 써야 해서

연예인 다이어트/ 연예인 피부, 몸매 관리법

해외 외신을 따와서 기사를 써야 한다.


이 중 연예인 기사는

정말 쓸 때마다 현타가 왔다.

뭐, 연예인 000이 인스타그램에

운동 인증 샷을 올렸다거나

몸매가 좋아 보이는 사진을 올리면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기사를 쓰는데 힘들었다.


이 기사가 조회수를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공익성이 있는지 늘 고민했다.

기자가 돼서 이런 기사를 쓰고 있는 게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우리 아빠가 늘 하는 말씀이 있다.


"바비야,

뉴스를 보면 늘 정치인들이 싸우고

범죄를 저지르고 머리 아프고 우울한 일들밖에 없다.
네가 쓰는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

재미있는 기사들 많이 써라.
네가 썼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네 기사가 제일 재미있다."


우리 아빠도 폭싹 속았수다의 박충섭 엄마처럼

'딸'이 썼다는 이유로,

그 내용이 어떻든 자랑스럽고 계속 보고 싶은 걸까.

그림이든 기사든 뭐든,

부모는 자식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랑스럽고 좋은 것이다.


너무 힘들고, 도무지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아빠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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