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오늘치 감사 65일차

by 김보


무언가에 푹 빠져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정말 때론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신비로운 기분이 들던 사람. 부럽기도 하고, 그 쪽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한 번이라도 그런 표정이 되어본 적이 있는가하고 자신이 별 볼 일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창피해서인지 압도되어서인지, 그럴 때면 시선을 조금도 못 떼고 가슴이 떨린다. 몰입은 그 사람이 하는 중인데 막 내가 떨고 있다. 그들에게 집중한 내 모습은 그렇게 약간은 그들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 있다.


특히 재즈를 볼 때면 십중팔구 가슴이 떨렸다. 세상의 대부분 일들은 ‘틀림 없는’에 집중하며 백 퍼센트를 지향점으로 잡는데, 재즈는 ‘제멋대로’에 집중하며 늘 백 퍼센트 그 위에서 뛰어논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솔로 플레이를 할 때 그의 손가락 보다는 입에 시선이 고정될 때가 많은데, 마치 접신한 것처럼 중얼 중얼 무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꼭 이곳에 반대편에서 듣고있는 관객과, 자신을 고용한 오너를 여기에 그대로 둔 채, 자기만의 세상으로 홀로 넘어가 열정적으로 떠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쪽 세상에서 우주를 떠다니며 한참 자유로운 대화를 하다가, 베이스와 드럼의 합을 맞추는 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음을 쳤을 때, 두고 온 관객들이 감동을 받아 박수를 막 치고 있는 장면이 한 가득 보이는 거다. 아, 그런 황홀한 여행을 매 플레이 마다 할 수 있다니, 이 때는 부러운 마음이 더 커서 가슴이 두근두근 들릴 정도로 뛴다.


영화 <소울>은 그런 감정을 스크린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떨려서 의자에 등을 기댈 수가 없었다. 재즈에 푹 빠져있는 주인공 ‘조’가 너무 반짝거려서. 완전 반해버렸다.사실 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나서 주인공 얼굴이 기억이 안 나는 경우는 잘 없었는데, 너무 깊이 몰입한 바람에 그 마음과 감정만 절절하게 박혔다. 재즈 피아니스트의 입만 쳐다보듯 나는 조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시선을 고정하곤 홀린 듯이 쫓아갔다. 힘내, 제발 잘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조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을 때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속도에 맞춰 내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아 이렇게 몰입을 다해서 감정 이입했던 영화가 있을까. 인생 영화를 대라면 당장 열 개도 댈 수 있지만 <소울>은 영구 결번이다. 나는 조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피아노가 치고 싶어졌다. 나도 조 처럼 되고 싶다. 여운이 길게 남아서 아직도 떨림이 잔상처럼 남았다. 영화를 다 보고 돌아오는 길, 4년 전 써뒀던 이상형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나는 그렇게 무언가에 푹 빠져 눈이 빛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로 영감을 주고받고, 자기가 빠진 것들에 대해 하루종일이라도 홀린 듯 이야기하고. 평생 서로의 몰입을 확인하면서 서로의 몰입이 되어주고 싶다고, 그 눈빛이야 말로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생각을 했었지. 오늘 밤 꿈에는 조가 나왔으면 좋겠다. 나도 그 세상에 꿈으로라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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