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친구도 좀 만나고 그래요”

D-100

by 김보

“주말엔 친구도 좀 만나고 그래요”


입사 1년 차 시절, 전 부서 나의 사수는 습관처럼 내게 말했다. 그녀는 우리 부서 뿐 아니라 그룹 전체에서 알아주는 소위 ‘인싸’였다. 그녀는 본 업무 외에도 수많은 농담을 제작하는 역할을 자처해서 담당했다. 사무실 공기가 문득 무겁고 건조해졌다 싶으면, 그녀가 허공에 적절한 농담들을 띄운다. 그러면 한 마디씩 댓글을 보태는 것으로 부서원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곤 했다. 물론 베댓은 대부분 부장님의 몫이다. 반강제로. 이런 게 우리 부서에서의 대부분의 유흥이자 환기였다. 나는? 그 중 가장 재미 없는 댓글, 혹은 성의 없는 댓글, 장기하 노래처럼 ㅋㅋㅋㅋ도 ㅋㅋㅋ도 아닌 ㅋㅋ, 이런 식. 회사에서 나는 주로 말수 없고 숫기 없는 무색무취의 어린 남사원이었다. 그녀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아마 부서 인싸로서 어떤 책임감이었을지도) 나의 인간관계를 자주 걱정해줬다. 그런 그녀를 부서에서는 다들 나의 ‘엄마’라 불렀다.


자, ‘엄마’가 모르는 ‘아들’의 비밀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대는 것을 내가 끔찍히 싫어했다는 것. 따뜻함을 빙자한 그런 말들 가운데 속뜻은 사회성이 왜 이리 부족하냐는 차가운 지적이라는 걸 내 모를 리 없었다. 그것도 엄마라면, 차라리 동화 속 계모에 가까웠다. 두번째는, 실은 나는 일주일에 세 네 개씩도 약속을 잡곤 하는 당신 못지 않은 인싸라는 것이다. (자랑할 의도는 아니다만) 걱정과 달리 매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단 이야기다. 사실 이 못된 아들은 친구 사귀기를 너무 좋아하여 퇴근 후면 엄마 몰래 열심히 친목을 다지러 다녔다. 숨기는 것은 친구 관계 뿐만은 아니다. 감수성이 풍부하여 브런치에 글을 즐겨 쓴다던지, 퇴근 후 이것 저것 일반인 공모전에 도전하는 취미가 있다던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면 가능한 많이 숨겨왔다.


심술이나 신비주의 같은 게 아니다. 입사 초반엔 나도 사무실에서 곧잘 내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내 일상을 가득 채운 관심사와 나를 지탱하는 다채로운 취미에 관해. 그러나 마음을 터놓고자, 혹은 스몰 토크 삼아 풀어낸 나의 사생활은 때론 구설수에, 때로는 업무와 연계되어 원치 않은 모습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3년을 지내보고서야 깨달은 것은, 아, 회사라는 게 원래 그런 곳이었다. 강한 색깔은 허용되지 않는 곳. 회사의 색으로 여러 번 덧칠하여 기어코 회색으로 만드는 곳. 채도도 색조도 없이 명도의 ‘강약’만 있는, 이 곳은 본디 여러 색깔이었던 눈빛이 한데 풀어져 붓 씻는 물통 마냥 탁해져버리는 그런 한없이 회색 공간이었다.

나는 보호색을 만들기로 했다. 회사라는 야생으로부터 진짜 나를 보호해내기 위한 보호색. 이제 친구들을 몰래 좀 만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페르소나를 하나 만들어내 진짜 나를 거의 완벽히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고도화된 훈련을 통해 이젠 MBTI 마저 정반대 성향으로 나온다. 이 모든 일들이 3년 남짓 직장 생활 속에서 본능적으로 차차 진행되었다. 그렇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숫기가 없어서 누군가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직장인이 되고서 내가 가장 능숙해진 분야는 업무 스킬보단 완벽한 이중인격자로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차차 주변 선배들의 유난히 지쳐있던 회색 눈빛이, 나와 다를 바 없는 이중생활에 익숙해진 까닭이란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여기서 나가야겠다고.



우리같은사람들 - 영웅은 어쩌다 평범한 인간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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