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인간은 참 변태같아. 불행이 닥치면 곧바로 더 큰 불행을 떠올리잖아. ‘만약’을 잔뜩 보태서 아주 구체적으로 말이야. 맨날 그렇게 불행을 경계하면서, 왜 그렇게 불행을 떠올리는데 열을 올리는 걸까? 너무 지독한 냄새를 맡으면 중독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지도 몰라. 스스로 더 큰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거지. 그럼 이게 새디스트야, 마조히스트야?
불행은 항상 그런 식으로 좀 연쇄적으로 오는 것 같아. “아침부터 재수 없게” 신호탄이 되는 불행이 터지면, ‘재수’라는 걸 타고 곧 다음 불행이 와. 불행은 대부분 무례해. 내 의사와 상관 없이 마구 들이닥치거든. 그런게 몇 개로 끝나면, 옛다 '액땜' 정도로 눈 감아줄 수 있어. 그치만 어떤 불행은 아주 지독해서, 내가 아주 항복하지 않으면 끝도 없이 다그칠 때도 있어. '그래, 전부 내 탓이다.' 억울한 마음은 곧 우울로 변해. 불행을 곱씹으면 아주 울고 싶은 마음이 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랫말도 있잖아. 그러니까 그건 스스로 만들어낸 불행일지도 몰라. 상상력은 힘이 세니까. 요즘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늘어가는 시계를 보며 그런 상상을 해. 앗, 이러다 진짜 별로인 사람이 되겠는데? 그럼 어김없이 별로인 하루가 시작되지.
오늘도 그런 식이었어. 아침 10시에나 일어나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에 가득찬 차들 사이에 껴서 움찔움찔거렸지. 계획한 모든 것이 빗나간 불행. 이렇게 약속 시간엔 또 늦을테고, 나는 미움을 받을테고, 미뤄둔 영상 편집은 또 미룰테고... 그런 불행을 끝도 없이 상상하다가, '쾅'. 정신을 차려보니 앞차가 너무 가깝다. BMW야.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 알아? 와 그거 진짜 비싼 차였어. 다행히 아무도 다치진 않았는데, 그 와중에 고속도로 한가운데 서서 보험사 통화 연결음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봐,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나는 블랙코미디언인가봐. 그 와중에도 내 불행이 너무 웃펐어. 나는 대체 왜 이딴 예측놀이를 즐기는 걸까?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픈데 말야. 아마 그건 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취주사 같은 걸지도 몰라. 내 생각대로 되는 건 하나 없지만, 예측만큼은 적중했잖냐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 모르겠다.
보험 처리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여기까지가 이번 불행의 끝인가, 다행히도 차주분이 너무 좋은 분이셨어. 보험사도 큰 문제없이 잘 처리될 수 있을 것 같대. 온몸에 힘이 빠져서 돌아오는 길에 또 사고 날 뻔 했다. 이 연쇄불행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꽤 노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미숙하다. 운전도, 불행을 컨트롤하는 일도, 내 인생도.
그런데 그 차 말야. 쌩생 달리는 중에 박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연쇄추돌이었다면? 나는 빈털털이가 되었거나, 사람이 크게 다쳤거나, 감옥에 갔다거나... 휴, 이것 봐. 변태 맞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