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관하여

이사 중에 든 생각

by 김보


이사를 했다. 어릴 때부터 집이 자주 이사를 했던 터라 대수롭지 않았다. 이 집에 2년을 살았구나 하는 새삼스러움과 부쩍 늘어난 짐이 귀찮다는 정도. 그러고 보니 혼자 사는 사람치고 짐이 참 많다. 벌써 대형 박스로 서른 박스를 쌓았다. 강남에 자리 잡은 까닭에 친구들의 왕래가 잦아서 인테리어에 욕심을 내다가 결국 공식 놀이터가, 술집이 되어버린 맥시멀리즘 집이었다. 이 집은 많은 사람들의 근사한 로망이었다. 그 애는 그게 도무지 싫다고 했다.


그 애는 그게 싫다고 했다. 친구들도 재워주지 말고 술집처럼 해놓지 말란다. 그냥 싫단다. 그래서 침대를 방으로 들이고 식탁의 의자도 한 쌍을 남기고 팔았다. 전구며 간판이며 컨셉 장식들을 다 버렸다. 내 연애가 시작된 이후로 친구들은 별안간 아지트를 잃었다. 생각해보면 내 자취 인생 10년 중에서도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항상 왁자지껄하고 누구나의 쉴 곳이 되어주던 집이, 철처히 데이트 용도로 전락한 것이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그 애는 집안일이나 궂은 일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음식을 차려주면 침대에 벌러덩 누워있다가 자기 집으로 팽 돌아가곤 했다. 설거지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기분이 상했다. 내가 무슨 호텔 직원이라 생각하는 건지? 너는 왜 이 집을 ‘우리집’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구박을 했다.


이사하는 날, 그 애랑 같이 짐들 하나 하나에게 작별 인사를 해주고 농담을 나누며 바래다 주는 길에, 별안간 그 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애기처럼 앙앙하고 한참을 서럽게 운다. 자기 동네도 아니고 자기 이사도 아닌데 이게 그렇게 슬픈가? “왜 너가 울어”, 그 애가 말했다. “이제 다시는 그 집 못 가잖아” 아, 그 때 깨달았다. 얘는 그 집을 정말 자기 집이라고 생각했던 거구나. 자기 집에 누가 오는 게 싫었던 거고, 그래서 격 없이 발라당 누웠던 거구나. 나랑 같이 우리 집에서 보냈던 추억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함께 김밥을 만들어 먹고, 빔을 켜놓고 게임을 하고, 많은 밤들을 보내고, 많은 약속을 함께 속삭였던, 그 많았던 이 집에서의 추억들이 한가득 머리 위를 지나갔다. 나는 그만 울고 있는 그 애를 꼭 끌어안고 펑펑 울고 말았다.


나에게 집이란 그저 잠 자는 곳, 노는 곳이었다. 공공장소였던, 누구나 그저 하루 놀다 가는 큰 의미 없던 우리 집이, 그 애 덕분에 처음으로 안식처라고 느껴졌다. 집안일을 잘 잊고 서툴었을 뿐이지, 그 애 만큼 이 집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고마워서 마음이 벅차 올랐다. 나는 한번도 가져본 적 없던 이사에 대한 아쉬움이라는 감정으로 그 애 품에서 한참을 울면서 내가 정착해야 하는 곳은, 나의 집은 여기구나, 그런 다짐을 했다. 내 인생 가장 슬픈 이사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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