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간 글쓰기 4일차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 1위 'Happy birthday'.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글로벌 공통 룰이다. 생일이면 사람들은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케이크를 사다주며,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뒤적거리고, 행여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생일인데'를 반복하며 조심스러워 한다. 단톡에 갠톡에, 때로는 뜸했던 사람의 선톡까지. 어쩌면 세상 가장 강력한 축하가 생일 축하 아닐까.
생일 축하를 받을 때면 묘한 얼떨떨함이 있다. 반겨주고, 기뻐해주고, 배려해주고, 때론 날짜를 잊었다간 최선을 다해 미안해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오늘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싶다. 사실 나는 오늘을 위해 아무 노력도 한 것이 없다. 살다보니 이 날까지 살아왔고 애초에 태어났을 때부터 거저 얻은 생이었다. 공모전, 취업, 졸업 같은 것에 대한 축하에는 존경과 인정처럼 구체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나를 잘 모르는 사람까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축하세례를 부어주는 것을 보면, 어떤 감정으로 축하를 하는건지 공감이 어려울 때가 있다.
나도 살아오며 꽤 많은 사람들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했었다. 그 때마다 성의없이 생일 축하해~ 하고 싶지 않아서 카카오톡 선물하기도 뒤져보고, 우리의 진했던 추억도 꺼내보고, 그러다 본론으로 '맛있는 것 많이 먹어'나, '꼭 좋은 하루 보내'라며 신신당부하곤 했다. 그 감정을 떠올려보면, 그건 어떤 기념이라기보단, 내가 널 생각하고 있다라는 인증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꼭 그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마땅히 생일 축하해줄 내 사람 리스트'에 내가 무단불참하게 될까봐, 그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어린 때의 어느 날, 내 생일을 잊었는지 축하를 해주지 않은 친구를 향해 불평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섭섭함이었겠지. 그 다음 날 창피한 마음이 들어 그 친구를 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몇 번의 섭섭함과 창피함을 경험한 뒤에 철이 들고서 나는 생일날 특별한 걸 하지 않게 되었다. 더 보통 날처럼 하루를 보내고 늘 보던 사람들과 저녁식사 정도. 오히려 차분히 보내게 된 후로 한 해가 한 바퀴 또 돌았구나, 나이를 또 먹는구나 하는 감상이 또렷해져 좋았다. 그러니까 나는 꼬깔을 쓰고 초를 불지 않아도 괜찮다. 이 날이 꼭 좋은 일들로만 빼곡한 하루가 아니라 해서 위로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더라도 정말 괜찮다. 물론 낳으시느라 정말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와 날 생각해준 친구들의 축하에 큰 감사를, 나는 이미 태어나길 잘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