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글쓰기 10일차
예전에 블로그에 써둔 글들을 읽었다. 2015년부터 2019년도까지 200편이 넘는 생각과 영감들. 하나하나 넘기다보니 첫 글까지 오는데 한 시간이 더 걸렸다.
그 때는 수원에 살며 서울을 왔다갔다 하느라 매일 왕복 두 시간씩 타는 광역버스가 한몫 했겠지만, 꽤 많은 시간을 사색에 쏟았다. 아무리 바쁜 중에도 어떤 작은 감정, 짧은 생각이라도 미치면 어딘가에 하나하나 메모해뒀다가 하루 마지막에 블로그를 열어 글을 정리하고, 시인이 탈고하듯 글을 다듬었다. 책꽂이에 아끼는 책을 꽂듯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나에 대한 정의가 너무 고팠던 그 때는, 혹시 지금 스친 이 생각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의 큰 단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꼬투리를 잡았다. 집요했다. 이렇게 잡아둔 생각들이 나중에 나를 좀 알게 된 시점에 돌아봤을 때 꼭 여기까지 건너올 수 있었던 징검다리리라. 그러다 어쩌면 겨우 이런 나도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고 일년동안 글쓰기를 잊었다. 이름 앞에 회사 이름이 붙은 후 나는 더 이상 나를 정의할 필요를 잊었다. 이 회사 사람이라니, 이 사람은 열심히 살았구나, 이 사람은 능력이 있구나,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 알아서 정의되는 나의 가치. 열 마디의 서술어보다 더 구체적인 한 마디의 수식어. 그건 너무나 편리했고 때론 그 이상의 가치로 나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사색을 잊으니 시간이 참 많아졌다.
많아진 시간에 나는 주로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게임을 했고 기름진 것들만 먹었다. 가만히 돈을 쓰고 의미 없는 일과들을 이야기하고 상사 욕을 하고 회사 욕을 하며 불쾌한 일상에 기름을 부었다. 요즘 뭐하고 사느냐 물으면 이미 휘발되고 허무함만 남아 입이 텁텁해 이렇다 할 대답을 못했다. 누굴 만나도 할 말이 없으니 그저 취할 때까지 술잔만 들이켰다. 일년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가만 보니 이게 내 이름 앞에 붙은 것이 나를 꾸미는 말인지 나를 가리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비계처럼 내 위에 껴 원래 내가 어떤 고기인지 모르게 되었다.
예전에 써둔 글들을 한참 읽고서 나는 지금 내 비계들이 한심하다. 글들은 어리숙해서 낯 간지러워도 가만히 멈춰 있지 않았다. 늘 나에 대한 사색들이 가득해 누구와라도 하루종일이라도 내 생각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겨우 한 조직의 임직원으로 정의되는 지금과 달리 무엇이든 마음 먹은 대로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쉴새없이 닦아 빛이 나는 내가 썩 마음에 들었다. 채 5분 내 생각 말할 내용 없어 흐리멍텅한 지금과 달리 눈이 빛났었다. 나는 살기 위해서, 굳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내 이름에서 비계 같은 회사를 떼어내어야 한다. 남이 나를 으레 짐작하지 못하도록, 열마디의 말로도 나를 표현해낼 수 있도록, 다시 나를 정의할 수식어들을 종일 찾아대야만 한다.
형 요즘 왜 이렇게 변했어요
지난 주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말을 듣고 나는 요즘 물에 잠긴 듯 하루종일 귀가 멍멍하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는가. 그래 이게 다 운동 부족이다. 내일 아침부터는 조금 뛰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