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혼나야돼

100일간 글쓰기 29일차

by 김보


위로 에세이를 너무 많이 읽었나. '괜찮아' 해버리는 버릇이 생겼다. 이제 힘 들 때 주저앉는 이유가 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힘 들 땐 쉬어도 괜찮아서인 것이 큰 문제였다. 탈진할 때까지 힘을 다 하고 뿌듯함을 느끼던 나는 어느샌가 남의 눈치를 보고 이 정도면 충분했지? 하다가 어느 적당한 시점에 체력 회복이라는 명분 하에 풀썩 앉아버리는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아는데, 오냐오냐에 큰 감복을 받는 캐릭터다. 오냐 한 번에 합리화를, 오냐 또 한 번에 자기 용서를 해버린다. 원래 알아서 잘 하던 스타일이고 계획을 잘 설정하는 성격이었다면 이런 ‘괜찮아’가 위로가 되어 추진력을 받았을 테지만, 이런 경우 열등감이나 위기감 같은 것이 겨우 게으른 나를 지탱하여 여차저차 굴러가고 있었던 까닭에 완전 무장해제 돼버린 뒤 전혀 괜찮지 않은 도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봐 지금도 퇴근 수고했다고 회에 혼술 까고 있는 것 보면. 퇴근에 대한 오냐로 한 번에 세가지나 어겼다. 혼술 금지, 과식 금지, 과소비 금지. 나는 욜로 1세대에 비로소 이 때다 싶어 모든 걸 놓고 합리화해버린 대표적인 요즘 애들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같은 애들은 좀 혼나야된다. 유행은 돌고 도는 거랬으니까 언젠가 청학동 스타일 훈계 에세이도 열풍이 되어 돌아올 거다. 이건 그 트렌드를 미리 보는 글이다. 나처럼 많은 합리화들로 ‘괜찮아’를 허용해버린 사람들에게 오냐오냐의 무서움을 공유하고 싶다. 느슨해지는 일상에 긴장감을 주고 싶다. 그 긴장감으로 또 한 나절, 주저앉은 나를 움직일 동력이 될 테니까. 그래. 게으른 내가 쓴 이 글은 누군가에게 위로 대신 훈계를 주는 에세이일 수도 있겠다. 잘 알겠지만, 기대면 기댈 수록 자기 엔 힘을 덜 주게 되는 법. 나는 따끔하게 혼내지는 못하더라도 뜨끔하는 훈계를 하고 싶다. 나 같은 사람 통해 뜨금하는 마음에 다시금 스스로 긴장감을 주는 그런 글. 괜찮아, 괜찮아 하다가, 진짜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을 놓치지 않도록,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의자에라도 앉게 만드는 그런 글을.


그래 나는 위로 대신 좀 혼나야한다. 누울 시간은 밤일테니, 낮에는 일을 해야 할테니. 그래서 하나님도 낮과 밤을 구분하셨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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