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글쓰기 30일차
누군가를 아주 아주 오래 지독하게 미워했던 적이 있다. 한 4년 동안을.
어쩌면 가장 소중했었던 기억들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그리고 살면서 다신 마주볼 일 없을거라고
내 인생에서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음 좋겠다며 꼬박꼬박 미워하던, 그래서 그 마음이 숨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워져 대수롭지 않아질 무렵
그 뜨거운 여름날, 거짓말처럼 그 둘은 다시 만났다. 밥 먹듯 서로를 미워하던 두 사람은 카페에 마주앉아 커피를 마셨다.
사실 궁금했다. 절대 그럴 일 없겠지만 둘이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하면서,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난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너의 표정은 어떨지 얼마나 통쾌한 상황을 만들어야 후련할지
헌데 정작 만나면 반드시 해줘야겠다고 수백번의 밤에 밤마다 준비했던 저주의 말과 원망의 말들은 아무 것도 하나도 꺼낼 수가 없었다
맞은 편에 앉은, 날 오래동안 힘들게 했던 너에게 난 이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내 분노를 깨닫게 해줘야하는데
오래 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목소리가 어떤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와서는 내 목을 콱 막았다.
지금 더듬어보건대 그건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미움과 원망이 두껍게 덮었지만 어찌 되었든 오롯히 또 순수히 한가지 감정에 몰두했던 추억이었다.
다신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나의 가장 어리고 순수한 마음이었다.
흙탕이 튀어도 기름이 섞여도 어찌됐건 그건 내 안에 흐르던 물이다. 내 인생 가장 찬란한 색깔의 물
맞다.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늘 그리웠다.
그 시절이 네겐 소중하지 않았냐며 어깨를 막 흔들고 싶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게 아니었다.
그냥 그 예쁜 추억들이 이렇게 원망의 단어들로 내안을 가득 메운 것이 너무 싫었다.
니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순수한 나의 그 감정들을 사랑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리도 꼬박꼬박 그리웠다.
매일 밤 내가 정말 미워했던 건,
니가 아니라 그 추억들을 미워하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아이스 커피를 마셨다.
딸그랑 얼음 굴러가는 소리
목을 넘어가는 약간 씁씁한 그 청량감과 여전한 그 스스럼 없는 너의 특유의 성격 탓에
4년 만임에도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누굴 만나고 있다고
잘 사느냐고
그 때 기억하느냐고
참 풋풋했었다고
가끔 떠올랐었다고
그러다
그리고 담담히
많이 미워했었다고
가끔 미치도록 널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6년전 니가 들려줬던 가을방학의 비도덕적인 느낌까지 들었던 이상한 긴 제목의 노래가 있었지
그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젠 그 열여섯 음절의 건조한 뜻을 안다
그건 추적거리는 미련 같은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고 싶은게 절대절대 아니라
그리움
천일 밤이 넘는 미움조차 씻게 만드는 강력한 추억의 그리움이라고
나의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순수한 그때의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싶은 거라고
썩 마음에 드는 지금의 내 모습에 5년이나 지났는데도 니가 군데군데 묻어있지 않느냐며 신기하지 않냐며 다 보여주곤
그러다 가만히 참 찬란하지 않았느냐고 추억팔이나 하고 싶은 거라고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던
하지만 가끔 꿈 꿨던
다시 친한 친구가 된 니가 난 참 신기하고 썩 좋다
그래서 지난 6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늦게나마 간지러운 글로
너를, 그리고 나를, 이제 그만, 비로소, 용서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