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달인

100일간 글쓰기 19일차

by 김보


"사람은 아주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더 외롭다고 느낄 수 있어요"

캐롯, <이토록 보통의> 中


서울로 이사 온 이후로 부쩍 나를 찾는 친구들이 늘었다. 일주일에 많게는 두 세번, 그들이 내 시간들을 촘촘히 채우는 바람에 나는 심심할 틈이 없다. 반가운 친구들, 새로운 일상 이야기들. 그러나 때로는 정말 신기하게도 그 즐겁게 떠드는 소리들이 까마득히 페이드 아웃되고, 사람들도 흐릿하게 블러된 배경처럼 느껴지며, 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진짜 친구는 몇 없어' 이런 허무 섞인 우는 소리가 아니다. 혼자 있는 외로움이 차가운 온도라면 많은 사람들 속 외로움은 미지근한 느낌.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지난 몇 년 간 나름의 많은 생각을 해왔다


8년 전 군대에서, 2년 가까이 만난 여자친구랑 헤어지고서 많은 후회를 했다. 늘 둘이서만 붙어다니는 바람에 편지 한 통 써줄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까닭이다. 여기서 나가거든 꼭 주변에 내 사람을 많이 두리라 다짐하고 또 했었다. 제대한 후 보란 듯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았다. 대외활동이며 과 활동이며 한 때는 스케줄러가 쓸 곳이 없을 정도로 까맣게 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내 주변에는 쭉 사람이 많았다. SNS 친구 수로, 카톡 대화창 수로, 내가 이렇게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만족하고 때로는 과시하면서 마음에 참 만족스런 커다란 파도가 치던 날들이었다


허나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반드시 잔잔함이 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관계들의 뜨거움이 조금씩 사그라들 때, 일주일에 다섯 번도 넘게 만나던 가족 같은 그들도 결국엔 일년에 몇 번 안부나 묻는 사이가 된다는 걸, 아 한낱 지나가는 파도구나라는 걸 천천히 느끼며 회의감에 푹 젖게 된다. 우리는 평생 가야한다고, 시간 지나 변해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애틋하겠느냐고, 아무리 잔에 잔을 몇 백을 부딪치고 뜨거운 포옹을 하던 때라도 어떤 애틋한 추억이라도,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 어느 한 새벽 시간에 넉넉한 온기를 줄 뿐, 언제나 내 곁에 남아 늘 뜨겁게 데워주던 그것은 없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더 외로운 것은 미숙한 자존감, 그리고 그 이전에 타인에 대한 기대감 때문. 이 사람이 나를 위해 물질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뭔가를 줄 수 있다고, 또한 의리나 추억 따위를 볼모로 당신은 나에게 그래야만 한다고, 내가 아닌 타인에게 뭔가를 소원하는 순간부터 인간 관계란 피곤하고 부담스러워진다. 기대는 반드시 실망을 데리고 오는 법. 인간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설령 온전히 타인을 위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로서가 아닌 타인의 행복함을 통한 나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실행된다. 세상 어떤 타인도 나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상적인 관계는 튼튼한 자아를 가진 자신 그 위로 작게는 감정의 교류, 크게는 커리어의 발전과 같이 반드시 서로에게 발전이 되는 사이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마음씨 좋은 사람들과 모자랄 것 없는 관계를 지낸다 해도 튼튼하지 않은 자아 사이로 외로움이 얼마든지 침투할 수 있다. 그리곤 투덜댈 것이다 '이들도 결국 아니야, 이 세상에 날 온전히 사랑해줄 사람은 부모님 밖에 없어' 그러나 당연하게도 부모님 또한 내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도 자신의 행복을 우선으로 두고 누릴 권리가 당연히 당연히 있다.


결국엔,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나만을 위한 만족스러운 관계란 건, 절대로 없다, 없고, 없어야만 한다.

지향해야할 것은, 결코 이기적이지 않은 따듯한 개인주의. 튼튼한 자아로 누구에게나 좋은 영향을 끼치며, 어떤 크고 작은 갈등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관계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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