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키가 세자리 수를 갓 넘을 그 즈음일 거다. 어린애들은 절묘할 때마다 어김 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터트린다는 말이 알맞다. 어떤 웃음 버튼 같은 걸 툭, 건드리면 못 참겠다는 듯 꼭 소리 지르듯 웃는다. 숨 넘어갈 때까지, 멈추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이들에게 절묘하다는 것은 딱히 별 게 없다. 그냥 똥이나 방구 얘기, 유치한 이야기, 근거 없는 과도한 묘사나 말장난... 무슨 버튼이 그리 많은지, 사실상 몇 마디 이상 나누면 거의 반드시 빵 터진다.
나는 그 헤픈 웃음이 듣기 싫었다. 꽤 어릴 때부터, 그 소리가 아주 거슬릴 뿐더러, 주변 눈치도 보지 않고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싫었다. 특히 대개 그 웃음의 역치가 아주 낮다는 걸 자각할 때 쯤부터 속으로 어른이 어서 말려줬으면, 스스로의 수준에 부끄러움을 자각했으면 하고 젠 체를 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의 웃음'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그들의 웃음에 대해 '때 묻지 않은'도, '순수한'도 공감할 수 없었다. 어린애들도 때로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검은 속이 있고, 야한 농담이나 음흉한 타락성도 얼마든지 있다. 애초에 '순수'가 뭔데? 네이버에 '순수'를 검색하면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이라는 뜻이 나온다. 그렇다면 '순수한 아이들의 웃음'이란 말은 아이들을 너무 얕게 본 거다. 그들의 웃음엔 꽤 많은 재료들이 섞여있거든.
다 큰 어른이 되어 이제야 드는 생각은, 순수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스스로 물어본다. '그래서 좋으냐' 헤픈 웃음을 버리고 수준을 가지게 되어서, 수준 높은 절묘에만 웃게 되어 좋으냐고. 다 큰 나는 그 덕에 이상한 웃음소리를 얻었다. 웃어야 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웃기 위한 가식 웃음,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는 체면 웃음 같은 것. 진짜 웃음이 줄었다. 체면을 갖고 그만큼 행복을 잃었다. 그게 헤픈 웃음을 지양한 탓이라면, 나는 전혀 좋지 않다. 되돌아보니 '순수'라는 건, 즐거울 때 즐겁다고, 슬플 때 슬프다고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것, 내 감정에 대해 눈치 보지 않는 것이었다. 웃음에 수준과 눈치를 섞느라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소중한 순수를 너무 빨리 잃은 것 같다.
<타이타닉>의 명장면을 꼽을 때, '순간을 소중히'라며 빙긋 웃는 디카프리오를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웃음에 반한 까닭은, 그 많은 눈치와 수준들 사이에서도 당당히 솔직하게 자신의 철학을 말하는 그의 순수함 때문 아닐까. 여전히 초딩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들의 순수가 부럽다. 정말 즐거울 때 내 표정이 어땠더라. 내내 눈치 보느라 맘껏 웃어보지도 못한 멋 없는 하루가 스쳐지나간다. 웃음이쓴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