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를 그만 먹기로 했다

100일간 글쓰기 32일차

by 김보


또 최고 몸무게를 경신했다. ‘요즘 덩치가 커진 것 같다’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기 시작하더니, 어느샌가부터 나보다 덩치가 큰 사람을 찾기 힘들어졌다. 체중이 세 자리인 사람은 생활이 어떨까? 조금 걷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엄청 불편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최근에 몸소 체감하면서, 내 인생이 너무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또한 체감하고 있다. 경혐자로서 알려주자면, 세 자리를 바라보는 체중이란 서있는 것만으로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고,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며, 무엇보다 의지 게 꺾인다. 몸이 무겁고 힘드니 빠른 포기를 하게 되고, 어디론가 자꾸 숨고만 싶어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내가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게 느껴진다. 비단 체중 뿐 아니라 글 쓰는 것도, 좋아하던 취미생활도 지탱할 의지가 없으니 무너지기 일쑤다. 이게 다 빡센 회사 일정 때문이고, 약속 잡자는 지인들 때문이고, 코로나 때문이고... 나는 좀처럼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지경까지 왔다.


너무나 유명한 실험이 있다. <마시멜로 이야기>. 아이들에게 15분 간 마시멜로를 먹지 않으면 하나를 더 준다는 조건으로 진행된 실험으로, 요약하자면 ‘참을성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교훈의 내용이다. 초등학교 때였나, 이것이 대히트를 치면서 필독도서로 선정되어 나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 지금의 나는, ‘15분의 스트레스를 감당한 나는 이 마시멜로를 먹을 자격이 있어’라며 보란 듯이 입에 집어넣어버리는 그런 유형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이런 실험을 왜 하는거야. 어쩔 수 없이 마시멜로 먹고 싶어지게’. 이 염세적인 불평의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어른이 된 나는 스스로에게 마시멜로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15분이 아니라, 유도리 있게 합리적으로. ‘그럴만 했어, 여기, 혼술 마시멜로’, ‘충분히 쉬어도 돼, 여기, 오늘은 푹 자는 마시멜로’ 이런 식으로. 합리화로 마시멜로를 잔뜩 먹은 나는 불평 많은 마시멜로가 되어 주욱 하고 그 자리에 늘어져있다.


늘어진 몸을 일으켜 친구 K를 만나러 갔다. 그는 근 세 달 간 매일 20km씩 뛰고, 매일 글을 쓰고, 매일 책을 읽고 마치 신선처럼 산다. 억척스러운 면이 있지만 그만큼 주관 또렷한 K에게서 나의 갱생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는 나에게 달리기를 처방했다. ‘요새 겁나 춥던데, 달리면 이어폰 잘 빠지지 않냐, 마스크 쓰면 숨 쉬기 불편할 것 같은데...’ 나의 불평 섞인 우려에, 그는 특유의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뛰면 안 추워, 준비는 필요 없고, 쉬지 말고 그냥 있는 대로 뛰면 돼’ 우려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 말들은 마치 내 마시멜로를 압수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K는 항상 ‘그냥 해’라는 말을 좋아했지. 나는 늘 그에게 자극을 받아왔다. 생각해보면 자극을 받았던 순간들이란, 저거 분명 안 되는 건데, 어떻게 했지? 싶은 것들. 내가 합리화를 마치고 시도도 안 했던 것들을 누군가 그냥 시작해서, 너무나 잘 해내고 있을 때, 질투심과 자책으로 내 열정은 기름이 붙는 것이었다. 그 기름이 고스란히 나의 연료가 되고, 나는 그러면 한동안 치고 달리는 기차가 될 수 있었다. 이번에도 K의 말대로, 그냥 해보기로 한다.


2021년 1월 1일, 오늘부터 한 달 간 매일 달려보려고 한다. 오늘의 기온이 영하라는 이유로 다음으로 미룰 수는 없다. 어디 마시멜로를 꺼내야 하는 이유가 기온 뿐이랴, 내일 이른 아침의 일정으로, 술 약속으로, 컨디션 난조로, 내성발톱으로, 얼마든지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만들테니까. 이 체중은 스스로를 속여온 수많은 치팅데이로 만들어졌겠지. 내 인생을 잘못된 방향에서 우회시키기 위해서 합리화와 불평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앉아서 가장 달리기 시작하기 좋은 날을 셈하는 대신에, 그냥 있는 대로 뛰어나가야만 한다. 그러니까 하필 매일 뛰기로 결심한 것이 한겨울이라 해도 나가는 수 밖에는 없다.


나는 올해 마시멜로를 그만 먹기로 했다. 괜찮은 서른이 되기 위해서 괜찮아를 잠깐 잊을 필요가 있다. 그냥 이 실험실에 앉아 몇 분이 걸리든 참아보려고 한다. 그냥 달리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거다. 그리고 이 실험실에서 나가도 되는 그 때가 오면, 새로운 내가 되어서 진정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먹을 거다.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으로. 서른을 맞이하며 굳게 마음 먹는 첫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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