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년 만에 처음으로 10km을 뛰었다. 진짜 그냥 뛰래서 뛰었는데 뛰어지더라. 라고 쿨하게 말하기엔 뛰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달리기에 내 몸은 너무 무거웠고, 마스크는 숨 쉬기 불편했다. ‘뛰면 더워진다면서’ 하필 부는 1월의 맞바람을 얼굴로 밀어나가며 대체 언제 더워지냐면서 애꿎은 K를 원망했다. 근처에 뛸 만한 운동장도 없냐고 투덜대며 그냥 무작정 뛰었더니 이번엔 신호등이 자꾸 흐름을 막았다. 모든 조건이 나를 못 뛰게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역시 그냥 한다고 되는게 어딨어, 불평이 목젖을 툭툭 친다.
집 앞 논현역에서 출발해 신사역을 지나 한참을 달리다보니 쏟아져 나오는 헤드라이트들 뒷편으로 저 멀리 한강과 한남동이 보인다. 내 달리기 코스는 저 한남대교로 정하기로 한다. 400m, 운동장 트랙과 비슷한 길이로 쭉 뻗은 까닭이다. 저기 보이는 저 반대편 끝까지 가면 다시 되돌아오기로 하자. 저기가 터닝 포인트야. 그러고서 발로 힘껏 땅을 박차자, 냉동실 입김 같은 칼바람이 훅하고 얼굴을 덮쳤다. 회상하는 지금도 뒷목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영하의 맞바람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발을 멈추면 나는 내일도 못 달릴 것 같아서, 그래 저 끝까지만 딱 참고 달려보자고 머릿속으로 -200m, -150m, -100m 하고 간절하게 카운트다운을 세었다.
0m! 교각의 끝을 넘으며 천천히 가속도를 줄였다. 숨이 턱 끝까지 가빴고 더운 기운이 확 솟았다. 빡세게 뛰면 진짜 후끈해지는구나. 더운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본 순간, 지나온 트랙은 너무 아름다웠다. 반짝거리는 강물, 오색 선을 그리는 헤드라이트, 달무리가 어스름히 진 것도, 한강의 풍경은 너무 완벽했다. 항상 2호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면 사진을 찍던 나였다. 그토록 한강을 좋아했으면서, 조금만 뛰면 닿을 거리에 있는 이 풍경을 지난 한 해 동안 왜 한 번도 뛰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아까 뛸 운동장이 없는 ‘탓’을 했었나. 이건 명백한 ‘덕’인데.
터닝포인트를 돌아서, 숨을 고르고, 이번엔 힘을 좀 더 빼고 다시 달렸다. 아까는 원망스럽던 맞바람이 이젠 힘껏 등을 밀어주는 덕에 힘이 덜 든다. 많은 탓들이 함께 덕으로 돌아선다. 마스크 덕에 세찬 호흡 구령 삼아 리듬을 탔고, 근처에 운동장이 없는 덕에 탁 트인 트랙 위 환상적인 한강 야경이 나와 발맞춰 달린다. 마주치는 신호등들은 달리기 출발신호다. 걷다가도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면 무조건 달리기로 했다. 다시 보니 나의 달리기를 돕는 지형지물들이 그냥 뛰어서 발견한 이 트랙 위에 장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때로 탓을 찾느라 그 덕을 못 본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일들로, 꽝이라 단정짓고 내버린 것들이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기회로 사용되는 걸 본다. 코로나를 탓하며 겨우 게을러진 나는, 코로나 덕에 많아진 혼자 있는 시간에 자기계발로 부지런해진 누군가를 많이 보았다. 아무리 그들을 부러워하고 코로나를 원망해봐야, 온전히 그건 탓만 했던 내 탓. 탓을 덕으로 바꾸는 터닝포인트를 찾아야 어떻게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물론 터닝포인트는 언제나 열심히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있는 법이다.
오늘자 달리기를 마치고 체중을 재보니 벌써 2kg이 빠졌다. 내일은 좀 더 가뿐하겠지. 나는 이렇게 매일 한남대교를 달려야겠다. 매일 찍을 이 한남대교의 끝, 터닝 포인트가 내 삶에도 변환 지점이 되길 바란다. 하루 하루 끝을 향한 카운트다운을 세었던 절망적인 일상에서, 다시 아름다운 야경을 올려다보는 감사한 일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