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 이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00일치 글쓰기 44일차

by 김보


석 자 이름으로만 살아봐서 그런지 나는 어릴 때부터 이름이 외자인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이런 거다. 가령 학창시절 출석을 부를 때, 예를 들어 ‘김 훈’이라 치면, 선생님이 ‘김 훈!’하겠지. 그럼 이름을 덜 부르셨나? 생각할 쯤 훈이가 얼른 ‘네’ 대답하고, 그러면 얼마나 ‘훈’스러울지 궁금해서 돌아보게 된다. 물론 그런 훈이는 대체로 외모가 평범했다. 외자는 그런 힘이 있었다. 별 거 아니어도 주목하게 하는 힘, 의미심장한 맛. 이름 뿐이 아니었다. 외자인 것들은 대체로 그렇다. 계절보다는 ‘철’, 장소보다는 ‘곳’, 농담도 전체를 쓰는 대신 ‘농’입니다- 하면 그 가벼움이 덜었다. 나는 외자 이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짧음의 특별함, 그런게 다 여운인 것 같다. 의미심장하고, 끌어당기는 매력.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함축. 석 자가 들어갈 자리에 두 자가 들어가니 타인이 생각할 시간이 한 자 생기잖아. 그 시간에 궁금하여 누군지 속으로 상상도 해보고, 들여다 볼 생각도 가지는 거다. 여운은 상대의 시간을 가져오는 일이다. 음식도 이름도 사람도, 곱씹어야 참맛을 안다. 후루룩 읽어 버리는 산문보다, 찬찬히 생각하게 만드는 시처럼. 외자인 이름을 가졌다면 나는 시인이 되었을 텐데. 시인은 함축이 직업이니까. 필명 만들지 않아도 이름부터 여운이 있으니까. 한 글자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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