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도 열차가 오지 않는 승강장

100일간 글쓰기 56일차

by 김보

지금 계신 승강장은 당역 종착 열차만 들어오는 승강장입니다. 기다려도 열차가 오지 않는 승강장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건 한참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다 사람을 태우지 않는 열차를 세 번 보낸 직후였다. 이상한 느낌에 이어폰을 귀에서 뺐더니, 승강장 내 스피커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이곳이 기다려도 열차가 오지 않는 승강장임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하도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이제는 역무원까지 가세해서 '여기 열차 안 갑니다 갈아타세요 손님!' 한다. 어이쿠 민망한 마음에 잰 걸음으로 계단을 향해 퇴장하다가, 영국 언더그라운드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어가 서툴렀던 시절 뭔 말인지도 모르고 '영국은 배차가 긴가?' 하염없이 열차를 기다리다가 어떤 한국인의 도움으로 겨우 그 곳을 빠져나온 기억. 외국인들이 열차가 오지 않는 승강장이 뭔 말인지 아나? 외국인도 아니면서 분한 마음에 외국인 걱정을 다했다.


충분히 알아듣게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사수의 불분명한 업무지시가 그렇고, 사람의 마음이란 게 아주 그렇다. 서투르고 서로 다르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알았다면 바보같이 가만히 멈춰있지 않았을 것들. 영문도 모르는 채 날 지나쳐 떠난 몇 개의 열차에 대고 욕을 해보지만, 문제의 진짜 원인은 사실 대부분 나에게 낀 것들이다. 이어폰이 그랬고 내 고집들이 그랬고, 겁들이 그랬다.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닫혀있기에 5개 국어라도, 구글 번역기로도 소용 없다. 이미 낀 것들 위로 시그널은 충분히 전송 중일지도.


귀를 기울여야 들린다. 내가 움직여야 시작된다. 때론 언제고 서있는다고 열차가 오지 않는 승강장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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